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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그네의 윤리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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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사건은 전 세계 매스컴을 들끓게 했습니다. 이라크 내 미군들이 정복자의 윤리를 어겼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은 몹시 분노하였습니다. 정복자의 윤리는 관용(寬容)입니다. 전쟁 포로들은 수치와 모멸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기 마련인데 미군은 그것을 오히려 조소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면 끝없이 추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훈계하고 교육하는 가치체계 곧 부모의 윤리가 있습니다. 스승에게는 스승의 윤리가 있고 학생에게는 학생의 윤리가 있습니다. 경영자에게는 경영자의 윤리가 있습니다. '믿음장' 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을 통해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나그네의 윤리를 가져야 합니다(13절).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3절b). 여기서 성도의 정체성을 '나그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자신을 '나그네' 곧 순례자로 생각하며 사는 자들 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소위 믿음의 가문을 일으킨 구약의 족장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증거 했습니다(13절).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외국인의 삶 곧 이민 온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선조였던 아브라함, 요셉,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이민 온 사람으로 본향(本鄕)을 향해 떠날 나그네입니다.

나그네가 텐트를 칠 때, 텐트를 고정하는 못을 깊게 박지 않습니다.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면 모두 걷어서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영원한 순례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교회의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옵니다. 둔감한 성도의 영혼 때문에 성도의 삶이 위기를 당합니다. 윤리가 아닌 것을 불륜(不倫)이라고 합니다. 윤리를 깨뜨리는 것을 패륜(悖倫)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성도다운 생각과 태도를 갖지 못하고 산다면 무엇이라 이름 붙여야 합니까? 이 시대는 교회가 자기정체성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과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분별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가 육체를 벗기 전까지는 세상을 떠날 수 없지만 세상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자신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복음 17:14). 우리는 세상에서 가정생활, 직장생활을 하지만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권은 영원한 구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13절a). 롯이 아브람을 떠나 비옥한 소돔과 고모라로 떠났을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의 후손들을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창대하게 해주겠다. ' 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창세기 12:2, 14:16, 15:1, 15:5). 이 약속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개인적으로 받았지만 현실적으로 가나안땅에 완전히 정착한 것도 아니고 후손들이 많아서 왕국을 이루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구원사적인 면에서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주님이 오신 것을 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간격을 믿음을 가지고 메웁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삶의 전 존재를 던져 체험하는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영적 요소가 됩니다. 믿음은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히브리서 11:1).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은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만 생각해도 그들의 마음은 뛰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물증주의자들은 실험을 거친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적인 것이 모든 것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학만이 모든 것을 이끈다면 거기에는 인간성이 피폐하게 되는 윤리적인 함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2. 하나님은 나그네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를 축복해 주십니다(16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4-15절). 나그네 인생은 늘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여기 '본향'은 나를 얽어매거나 집착하게 하는 모든 것의 대명사입니다. 사람들은 본향 중심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본향은 나의 본능이 이끄는 것이요, 주님께서 있으라고 한 자리는 믿음의 결과로서 온 것입니다. 이 두 사이의 갈등을 극소화할 때 하나님의 자녀답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능을 따르는 윤리주의자가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신앙인으로 살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이 아닌 하나님의 신앙적 원리에 따라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나그네 인생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두 가지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① 하나님은 나그네 인생을 사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16절a).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16절a).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나그네 인생으로, 이 땅에 이민 온 외국인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이 부르실 때 언제든지 훌훌 털고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편 91:14-16).

② 하나님은 나그네 인생을 사는 성도를 위해 '한 성'(천국)을 예비하십니다(16절b).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 하셨느니라'(16절b). 하나님은 자신의 인생을 나그네 인생으로 인식하고 사는 자를 광야로 내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위하여 한 성(城) 곧,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하늘의 처소를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을 천국 혹은 하나님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소속은 이 땅이 아니라 천국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약속을 주신 주님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필요한 물질, 관계, 은총의 기회를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공급해주실 뿐 아니라 이 땅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이 직접 예비하신 한 성의 한 시민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주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것입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의 주권은 영원한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있음을 인식하면서 '나그네' 라는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믿음으로 사는 나그네 인생을 살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주님이 '나그네 윤리'를 실천하며 사는 성도를 위해 예비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구원에 더욱 힘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됩시다.

방랑자에서 순례자로 방황할 시간이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순례자로 살아갑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루며 의미 있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방랑자처럼 살아갑니다. 방랑자와 순례자의 차이는 목적지가 분명한가의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목적지까지의 과정에도 무게를 둡니다. 그러나 방랑자는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허비하는 데 익숙합니다.

새로남교회는 인생의 방랑자를 불러 순례자로 살게 하는 변화의 현장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삶의 탐스런 열매”를 주님께 돌려드리는 성도가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니겠습니까? 세속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교회를 사람들은 목말라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그리 스도께서 지금도, 마음껏 일하시고 사용하시려고 마음에 꼭 드는 교회를 찾고 계십니다. 올한 해도 주님께 발견되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있는 힘을 다해 여러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할 일은 우리를 부릅니다. 넘어야 할 영적, 육적 고비가 우리 앞에 버티고 있습니다. 어느 때 보다 비윤리와 부패의 광풍을 은혜의 바람으로 뒤집기 할 비전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해 가는 인생의 결정적인 시기에 모델이 되어줄 건실한 믿음의 기성세대가 반드시 일어나야 합니다. 지역적으로 대전과 중부권에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필요합니다.

새로남교회 믿음의 가족 여러분! 머뭇거리는 성도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 후손을 위하여 은혜의 본질에 뛰어드는 당사자가 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위하여 살기만 해도 시간이 빠듯한 인생입니다. 덜 가치 있는 것에 금쪽 같은 삶을 허비할 수가 없습니다. 방랑자의 삶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영적 순례자의 대열에 뛰어 듭시다.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께서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의 앞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오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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