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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은 가건물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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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인생을 논한다 해도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모르고 말한다면 진리일 수 없습니다.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이생은 시험장이요 광야이며,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아 사는 청지기직이라는 사실을 지난시간 살피며 은혜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인생은 잠간 이 세상에 살다간다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일시적인 삶을 말씀합니다. 나그네, 이방인, 대사, 안개, 풀이나 꽃, 연기, 한 번 내쉬는 숨, 그림자 등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인생이 유한한 존재라는 말은 누구나 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 삶에 대하여 성경처럼 명백하게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입니다. 믿음의 위인들이 믿음 때문에 자신을 희생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이 그런 고생을 감수했던 것은 진짜 집을 찾아간다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16) 이생이 유한함을 설명하는 여러 단어들을 뭉뚱그려 나그네와 대사(大使)라는 두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어떤 단어로 설명하든 이생은 가건물일 뿐입니다. 가건물은 소기의 사명을 다하면 철거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나그네
성경은 나그네나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그네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3)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것은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게 나그네의 삶이라는 걸 안 그들은 더 나은 본향에 소망을 두고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객지에 있는 사람, 손, 방랑객이란 뜻입니다.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나그네는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계속 지낼 곳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왔던 곳으로 갈 사람입니다. 나그네가 어떤 집에 신세를 지며 지내다가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면 이상한 나그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돌아갈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5) 우리는 세상에 사는 게 나그네요, 여행객이요, 손님이요, 방문객이요, 외국인으로 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주인처럼 행세하며 살면 안 됩니다. [벧전1:17]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준비해야 합니다.

비자를 가지고 남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간이 있습니다. 비자 기간이 끝나도 자기 나라로 안 가면 불법체류자입니다. 여기저기 여행을 해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좋은 음식들이 많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오는 희열이 넘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돌아와야 합니다. 마치 인생이 그렇습니다. 문명은 발달하고 참으로 편리한 세상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나 우린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요 여행자입니다. [빌3:19, 20]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영생이며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여행하다가 천국이라는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대사
인생이 나그네요 여행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떠돌이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대사(大使)입니다. 인간은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파송된 대사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라는 나라에 파견된 하나님나라의 사신입니다. [고후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대사는 본국의 왕이나 대통령을 대신합니다. 이 땅이 우리의 집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 왕이신 하나님께서 언제 소환을 해도 거룩한 채로 가야 합니다.

대사는 파송되는 나라의 문명을 배우고 언어를 익힙니다. 파송된 나라 안에서 살면서 그 나라 국민들과 어울려 삽니다. 그러나 그 나라 백성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파견된 대사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세상의 백성으로 사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이 영원한 집인 줄 착각하고, 여기서 인생의 그 무엇인가를 다 이루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보이는 것에 인생을 걸려고 합니다. 대사의 사명을 무시한 처사입니다. 만약 미국의 대사가 우리나라 국민이 되어 산다면 그날로 대사직을 파면당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가 세상나라의 백성으로 속되게 산다면 하나님의 대사직을 파면당할 것입니다. [약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되 물들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한다고 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먹고 갖는다고 다 먹고 가져서는 안 됩니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보는 것은 영원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하늘나라의 원리를 세상에 전달하라는 사명을 받고 대사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잘사는 나라의 대사가 못사는 나라에서 산다는 것은 고역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대사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때론 병에 걸리고, 사고를 만나고, 손해를 봅니다. 세상에서 채울 수 없는 욕구불만이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힘들어도 집에 갈 날을 고대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가건물
나그네와 대사, 모두 이 땅에서의 삶이 극히 짧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임시 거주지라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인생은 가건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가건물은 진짜 건물이 들어설 동안 임시로 지어놓은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식사를 한다든가, 임시 사무실로 활용합니다. 번듯하게 건물이 들어서면 거추장스러워 빨리 철거해 버립니다.

가건물 바닥에 고급 대리석을 까는 멍청이는 없습니다. 가건물에 고급자제를 가지고 지붕을 얹는 바보는 없습니다. 그런데 가건물인 이생에서는 그러는 바보들이 행진을 합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고전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세상의 물건에 마음을 두면 형적 없이 사라질 그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C. S. 루이스는 말합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 ” 그렇습니다.

이런 사실을 이미 안 시편 기자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시39:4-7] “여호와여, 내 생의 종말과 수명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나에게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내 날을 손바닥 넓이만큼 되게 하셨으니 나의 일생도 주 앞에는 일순간에 불과하며 인간이 잘난 척하지만 한 번의 입김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부산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지만 그림자에 불과하고 그 하는 일도 헛되며 기를 쓰고 재산을 모으지만 누가 가져갈지 알지 못합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나의 희망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 ”(현대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인생 스토리의 완결편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서 나머지 인생을 쓰는 것이요, 거기서 인생의 완결판을 내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나그네로 살려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적국의 대사로 살려니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돌아갈 곳이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신 나라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EX) 같은 배로 고국에 돌아온 대통령과 선교사 이야기, 환영받는 대통령을 보면서 불평하는 선교사에게 하나님은 위로하십니다. “내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온 것이 아니지 않니?”

삶이 힘드십니까? 아직 여러분의 집에 돌아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건물을 철거하고 진짜 건물에 입주할 때 그 기쁨을 함께 맛보지 않으시렵니까?/김학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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