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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은 (히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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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체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과 인간관계에서 믿음이란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해도 우리가 믿지 않으면 모두 허사가 됩니다.

1. 무엇을 믿을 것인가?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먼저 성경을 통해서 나타나신 특별한 계시의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이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위 자연을 보면 그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는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9∼20절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찬란한 태양, 밝은 달빛과 흐르는 강물, 출렁이는 대양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로 지어졌다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죄악으로 완악해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눈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는 어떠한 생물도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막 가운데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낙타의 발자국을 보고 그곳에 낙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9편 1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경이 앞에서 누가 감히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자연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뛰어 넘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18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흘리셔서 우리를 값주고 사신 그 대속의 은총으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3장 25절에서 바울 선생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의 담이 쌓여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지도 못하는데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 담을 헐어 없애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대속의 은총은 너무나 크고 영광스럽습니다.

스코틀랜드 북부지방에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높은 철교가 있었습니다. 철교 밑에는 깊고 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 이른 아침 양치는 소년이 계곡으로 나와 보니 전날 밤 폭우로 계곡 물이 넘치고 다리가 무너져 일부가 떠내려가 없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기차가 계곡을 향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소년은 기차를 멈추게 하려고 철길위에 서서 옷을 벗고 오지 말라고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기관사는 이 모습을 보고는 철로에서 나가라고만 기적을 울렸습니다. 소년은 계속 서서 옷을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어쩔 수 없이 기차를 급하게 세웠지만 양치기 소년은 그만 기차에 치어 죽었습니다. 기관사와 승객들이 나와 보니 양치기 소년은 죽어있었고 바로 그 앞에 넘치는 강물로 무너진 교각이 보였습니다. 소년으로 인해 기차가 멈추지 않았더라면 기차에 타고 있던 수백명의 인명이 몰사될 뻔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모두 몸을 떨었습니다. 어린 양치기 소년 한 사람의 피 값으로 수백명이 살아났습니다. 이 소년은 수백명의 생명을 구한 영웅이라 하여 신문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지옥을 향해서 쉼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달려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몸을 찢고 피를 흘리시며 지옥으로 가는 길을 막아 멈추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지옥으로 가는 길목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만이 우리를 소망있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연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미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특별히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또한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5절에서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의 성경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말씀 이외의 그 어떠한 계시도 우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멋있는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고 묵시를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그것은 모두 거짓이요 사단의 궤계에 불과합니다. 말씀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말씀 속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는 만나야 되고, 말씀 속에 계신 예수님을 우리는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뛰어 넘은 하나님의 계시나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사단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할 수 있습니다. 사단도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묵시와 계시를 줄 수 있습니다. 이 광막한 영적 세계 속에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며 성령님과의 교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방황하지 않고 하늘 나라 가는 길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6∼17절에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믿음은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믿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골로새서 2장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 믿음 위에 굳게 서야만 되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라
믿음이란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님의 은총을 받아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통해서 늘 깨닫고 알아야 가질 수 있습니다. 영적 세계는 육신의 세계를 뛰어 넘은 것이므로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영적 세계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바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오셔야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마음에 감화와 감동을 받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항상 우리는 성령님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들여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26∼27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고 우리를 안내하시며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닫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라봄의 법칙으로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는 끊임없이 꿈꾸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애굽에서 나왔을 때 주님은 그를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라보게 하시고 그리고 믿음을 주셨습니다. ‘바라봄’과 ‘믿음’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바라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으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아무리 약속을 주셨을지라도 그 약속을 통해 꿈을 꾸고 믿지 않으면 그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바라보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24∼27절에는 “저희가 낙토를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이러므로 저가 맹세하시기를 저희로 광야에 엎더지게 하고 또 그 후손을 열방 중에 엎드러뜨리며 각지에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역사 가운데에는 꿈과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 가를 보여준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꿈과 기도 그리고 믿음을 통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꿈을 향해 늘 바라보고 마음에 확신과 안심이 올 때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받았다는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한 번 바라보고 믿고 기도했으면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포기하면 아무 일도 안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8∼39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뒤로 물러가는 자를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서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러나지 마십시오. 한 번 주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그 길로 가십시오.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마음을 정하고 믿음으로 밀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기뻐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그러한 사람을 따라 일어납니다.

3. 믿음의 선언
우리는 꿈을 갖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2∼2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해야 합니다. 현재 이루어지지 않았다해도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입술로 시인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말이란 하나님의 창조의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을 지으실 때 친히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무가 생기고 새들이 생기고 물고기가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매 각종 짐승과 곤충들이 땅에서 뛰고 기었습니다. 말씀은 창조적인 위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동물보다 위대하게 만드신 것은 인간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동물들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말이라는 언어로 의사소통함으로써 창조의 능력에 하나님과 동참하는 것입니다.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능력입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말이 우리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우리가 생활 가운데 ‘나는 못산다, 나는 안된다. 할 수 없다, 절망이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올무가 되어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 갑니다. 말의 위력은 창조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창조적이고 건설적이며 성공적이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 그 말이 우리의 운명과 환경을 그렇게 만들어 갑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 가운데 모든 것을 말씀으로 이루셨습니다. 광풍을 잠재우실 때 예수님은 말씀으로 거친 광풍을 고요하고 잠잠하게 만드셨습니다. 말씀의 창조적인 위력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병을 고치실 때에도 말씀으로 병을 물리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에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은 그 말씀을 우리에게도 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성령의 능력과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우리가 기도하고 말하는 것은 우리 환경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를 가져옵니다. 주께서 문둥병을 고치실 때도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습니다.

귀신을 쫓으실 때에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귀신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죄를 사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사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예수님은 딸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야이로의 딸은 일어났습니다. 무덤에 들어간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돌을 옮겨 놓고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죽은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살아서 동굴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한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이 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할 것이라 말씀하셨으니 우리도 말씀의 능력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시인한다는 것, 내가 꿈꾸고 믿은 바를 말씀으로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위대한 창조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10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여도 입술로 시인하지 않으면 구원에 이르지 않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습니다’라고 입으로 말씀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창조적인 역사를 베풀어 주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도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인하고 부인하는 것은 입술의 말입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도 선교사로 잘 알려진 스텐리 존스 목사님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신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유명한 저술가요 선교사요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존스 목사님은 모든 일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여 건강하게 살았으나 89세가 가까웠을 때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존스 목사님은 수 개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존스 목사님은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부탁을 하였습니다. 아침이든 낮이든 자신을 보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자신은 마비로 인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 말을 간호사가 하도록 부탁하였던 것입니다. 간호사들은 존스 목사님을 보면 언제나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고 그러면 목사님은 ‘아멘!’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이 일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그러나 존스 목사님은 입으로 말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그는 인도의 히말라야 산지로 휴양을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목사님은 계속해서 간호사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되풀이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89세 된 노인이 중풍에서 완전히 나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는 꿈과 믿음을 갖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 고백하는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요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이요, 무를 유로 변화시키는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꿈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입술로 시인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입술로 시인하는 것은 우리 믿음을 풀어 놓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신앙을 보십시오. 예수께 찾아와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이 귀신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지금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서 왔지 이방인들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인은 예수께서 가시는 길을 막고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식에게 주는 떡을 취해서 개에게 주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여인은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자녀들의 밥상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는 얻어 먹습니다. 부스러기라도 주십시오”라며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여인아! 네가 이 말을 했으니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고 응답하셨습니다. 말 한마디로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이방인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 믿음의 고백이 얼마나 컸던지 여인의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꿈을 갖고 믿음을 갖고 입술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언제나 마귀와의 전쟁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자꾸 우리를 낙심시킵니다. 우리가 과거에 실패했던 것을 기억나게 해서 우리에게 ‘안된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꿈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입술로 고백할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영적 전쟁 가운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마귀와의 전쟁은 입술의 말로써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기도와 믿음을 훼방하여 우리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며 분쟁과 절망을 가져오는 악한 영들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만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내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성경은 ‘어린 양의 피와 그 증거하는 말씀으로 이를 이겼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 전쟁에서 마귀와 대결하여 마귀를 쫓아내고 승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9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꿈꾸고 믿고 입술로 시인하며 마귀를 쫓아내어도 응답이 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참는다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고 난 다음에는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급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오래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3장 5∼6절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히 야웨를 앙망하고 기다려야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적 세계에서 우리의 눈이요 귀요 마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믿음의 손으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의 은혜 속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대속의 은총을 믿고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꿈을 갖고 기도하며 입술로 시인하고 마귀와 싸우고 인내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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