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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짓 선지자의 교훈 (벧후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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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베드로후서 2장의 말씀은 성경 중에서 가장 무서운 장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과 재난과 파멸에 대해서 모든 성경 중에서 이 베드로후서 2장이 가장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 사도 베드로는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미래를 대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지난 장에서 주님께서 이제 노인 된 그에게 얼마 더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그들에게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떠날 때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서 여기에서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미래를 바라보고서 여기서 그들에게 미래를 대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가 주는 메시지는 말하자면 경고입니다. 그는 이미 그의 편지에서 그들이 서 있는 큰 진리와 결코 실패할 수 없는 견고한 진리에 대해 그들에게 상기시킨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상기시키고 나서 이제 그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약 성경의 매우 전형적이고 특징적인 방법입니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대비시킬 때 신약 성경은 언제 어디서나 바로 그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신약 성경의 중심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신약 성경만큼 사람들을 의기소침하게 하는 책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복음의 핵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신약 성경만큼 인생에 대해 그렇게 비관적이고 의기소침하게 진술한 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약 성경 어디나 펴 읽어 보십시오. 어디서나 위기의식과 심판에 대한 생각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 세상에 사는 인생은 막강한 두 세력 사이의 무서운 투쟁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둘 다 영적인 세력입니다. 한편은 하나님과 그의 군대요, 다른 한편은 사단 곧 마귀와 그의 군대입니다. 이 두 세력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투쟁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이 투쟁을 잊어버리도록 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라고 말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일제히 반대하는 악한 세력과 군대들 때문에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위험한 곳이며, 그들은 항상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너희 그리스도인들이여, 경계하고, 살펴보고, 주의하고, 경성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고 빈틈없이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코 불시에 기습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기습하려는 악한 군대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이 악의 군대는 우리를 다루는 방법에서 거의 끝없는 변화를 구사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그들 자신을 진리라고 주장하고 우리를 구원의 길로 안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거짓 선지자로서 우리 가운데 나타날 때가 가장 교활하고 위험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구약 성경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고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장 1절을 보세요.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적용되는 상황입니다. 초대교회에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일도 역시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방법을 명백히 알아두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어려운 세상의 상황을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위험은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들로부터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은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오지만 사단의 사자일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베드로가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알아야 한다고 한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도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충고나 그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보세요. 그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무엇인가 보세요.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기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해주고 있습니까?
먼저 부정적인 면을 보면, 선지자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어떤 잘못된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로운 것은 무엇이나 옳다”고 하는 주장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20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살던 사람들이 알 수 없었던 어떤 것을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면 이것은 억측입니다.

여러분,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은 옛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 신약 성경의 역사 철학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언제나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0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살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압니다. 성경의 대답은 인류가 타락한 이래 이 세상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물론 피상적인 변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변화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옷을 입고, 다른 방법으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피상적인 것들을 말하지 아니하고 인생에 관한 인간의 문제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20세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생의 문제점들을 대처하는 데 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고 어리석게 생각하면 우리는 실패와 재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여전히 같습니다.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지 말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말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타락 이후에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오늘날 핵심적인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을 시험하는 방법 중에 다른 하나는 그 가르침이 인기가 있으면 그것은 틀림없이 옳은 것이라고 가정하는 잘못입니다. 오늘 말씀 2절에 뭐랬어요?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거짓 선생들이 너희 가운데 일어나서 군중의 인기를 끌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믿습니다. 이제 더 이상 성경을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교양있고 교육받은 사람은 아무도 성경을 믿지 않습니다. 저 교회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군중은 언제나 옳기 때문에 기독교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실 그 주장은 유치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세계 역사 어느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에도 맞는 말입니다.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을 것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홍수를 기억하시지요? 그 당시 모든 사람이 노아의 전하는 말을 믿지 않고, 심지어 노아를 도와 방주를 짓는 일을 하는 사람까지도 이제 홍수가 온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다 잘못되었고 오직 노아의 가족 여덟 사람만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구원받은 사람은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이 그것을 말하고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입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여기서도 우리는 똑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때도 많은 사람들 모두가 잘못된 편에 서 있었습니다. 롯과 그의 딸들만이 구원받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남은 자의 교회를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 그러니까 대중 모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고 단지 소수의 남은 자만이 진리를 고수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가슴 아픈 일은 군중의 인기를 진리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입니다. 머릿수를 세는 것으로 영적인 진실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머릿수를 세는 것은 가르침이 옳은지 그른지를 가려내는 성경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인기와 사람의 수로 진실을 판단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도 그것이 진실이라는 보증은 없습니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나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세요. 거짓 선지자들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세상에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밖에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민간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 선생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거짓 선생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을까요? 교회 밖은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사도행전 20장을 읽어보면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는 것을 볼 것입니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꼭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거의 모든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에서 그들 사이에 있을 거짓 선생들에 대하여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메시지를 전파한다고 해서 그 메시지가 진실이라는 보증은 없습니다. 교회 안의 거짓 신앙 고백자, 거짓 그리스도인이 있고,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나 사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므로 거짓 메시지를 전파하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그런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아주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도가 이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교회의 분열도 아니고, 교파가 많은 것도 아니고, 하나의 조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교회가 거짓 메시지를 전파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대로의 하나님의 진리에서 떠나고 있는 것이 비극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도 거짓 선생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언제나 거짓 선생이 있습니다. 어느 건전한 교단에서 전한 것이라고 해서 틀림없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안에서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꼭 진실한 선지자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가 거짓 선생이고 거짓 선지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전파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에게 이끌려갈 가능성이 가장 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긍정적으로 거짓 선지자를 시험할 수 있을까요? 베드로 사도는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 모두 성경에 나타나 있고 성경은 한결같이 거짓 선지자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그들의 특징을 보세요. 교회사를 통하여 그것들을 보세요. 그 유형은 다양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는 부르심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약속도 역시 거짓입니다. 그는 전혀 선지자가 아닙니다.
앞 장에서 진실한 선지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그는 성령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메시지를 받고 감동하고 그 사실을 말함으로써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여러분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거짓 선지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 자신의 사상을 공교히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는 실제 권위가 없고 하나님의 승인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자신의 이론이나 사상을 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선지자는 성경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거짓 선지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 것을 전파합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에게는 진실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메시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을 것이고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그 말이 아무리 능하고 부드러워도 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특징은 언제나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비난하지 않고 우리를 기분 나쁘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욕심이 너무 많아 항상 인기를 갈망한다고 베드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거짓 선지자는 “지은 말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자신이 죄인이거나 잃어버린 자라고 생각하게끔 하지 않고 자신을 미워하거나 속에 있는 죄를 미워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이런 저런 방법으로 우리가 어지간한 상황에 있기만 하면 우리에게 훌륭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꾸며낸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메시지를 시험하는 더욱더 진지한 방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은 자기들을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사신 주님을 부인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들은 오직 그를 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자기들을 사신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급되지만 주 그리스도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무시함으로 주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중심에 놓고 지극히 중요하고 꼭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음으로 주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주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혀 모시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또 거짓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인격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를 단지 하나의 인간으로, 위대한 선생과 훌륭한 모본으로 생각함으로 그를 부인하고 또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인격의 영광과 충만함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 즉 그분이 하나님이자 동시에 인간이라는 것을 부인함으로써 주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아주 심하게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과업을 부인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정죄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에게 가는 유일한 길인 것을 부인함으로 그들 자신들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에 그들의 죄를 짊어짐으로써만 구원 받을 수 있었던 절망적이고 저주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함으로써, 그러니까 십자가의 핵심적인 의미를 부인함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든 간에 갈보리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실제로 그 가르침의 중심점이 아니면 그는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속죄에 마음을 두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에게도 소망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는 거짓 선지자이며 거짓 선생인 것입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생은 그들의 삶이 거짓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고, 진실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진실한 삶이 없습니다. 그리고 여럿이 저희의 “호색하는 것”을 좇을 것입니다. 이 말은 저희의 “음탕한 길”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짓 가르침은 언제나 거짓 생활로 나타납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복음주의자들이 개인적인 체험은 적절히 다루어 왔지만 인간의 윤리적인 면을 다루지 아니하고 사회 문제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복음주의자들은 인간 개인을 회심시키는 일을 했지만 민족과 사회를 실제로 향상시키지 못했다는 평을 들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소위 사회 윤리적인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언제나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부도덕과 악이 팽만한 요즈음의 사회상태를 살펴보세요. 메시지가 잘못되면 생활도 언제나 잘못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인생관은 비록 윤리를 전파한다고 해도 잘못된 생활과 낮은 차원의 윤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나면 생명력과 능력과 활력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대답은 항상 거짓 교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노아 때의 홍수를 기억하시지요?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이 어떠했었습니까? 불경건과 방종과 도덕적인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세상은 너무나 끔찍한 일들로 가득 차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 세상을 그런 지경으로 이끌고 갔나 하는 것입니다. 그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살아갈 방법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에게 법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모독했고 하나님을 저버렸으며 하나님의 이름과 생각과 제안을 저버렸습니다. 일찍이 심판의 방법으로 홍수가 일어나 세상이 그 지경이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자기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일이나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된 불법이 홍수를 일으키게 한 원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경우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8장과 19장을 읽어보세요. 그러면 그 끔찍한 도덕적인 오염과 그 도시의 생활의 추함과 부패의 모든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원인은 똑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율법을 떠나 그들 자신의 욕망과 육욕을 따라 살고 있었습니다.

대답은 언제나 같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보나, 초대교회 때의 경우를 보나,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보나 언제나 똑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세대는 어떻습니까? 오늘의 세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때에 있었던 상황으로 즉시 돌아가게 되고 맙니다.

자, 그런데 거짓 교훈은 미묘한 데가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을 보세요.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했습니다.
여기 “가만히”라는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 거짓 선생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나는 거짓 선생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에 들었던 것에 전적으로 반대하는 말을 할 것입니다”라고 밝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와는 반대로 ‘가만히,’ 아주 미묘한 방법으로 들어옵니다. 알지 못하게, 느끼지 못하게 들어옵니다. 그들은 복음의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복음을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신약 성경의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식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은 용어의 의미를 달리함으로 이단의 독이 ‘가만히’ 스며들어 오게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진실성이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17절에서 19절까지의 말씀을 보세요.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능력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역사하는 힘이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공허한 말뿐이며 오직 타락과 절망으로 이끌어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교훈을 피해야 합니다. 왜요? 그것들은 “우리를 멸망케 하는 이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진리가 악평을 듣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이 성경을 가지고 다른 이들의 신앙을 손상시킨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훌륭한 교훈으로 받아들이게 한 일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악평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이단을 피하기 위하여 아주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진리에 확신을 가집시다. 믿음을 굳게 잡으십시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에 의해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견고히 서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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