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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히 06: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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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일입니다. 신문마다 국내외에서 일어나 열 가지 큰 사건을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영적인 면에서 볼 때 나에게 일어난 신앙의 열 가지 사건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에게는 우리의 신앙을 발전시킬만한 열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까.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함께 세우는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대부분 이미 오래 전에 '함께'라는 단어의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혹시 '함께'를 주장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개개인의 자익을 위한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함께'를 실현하기 위하여 결성된 국제연합 (U.N.)에서 마저도 항상 우선이 되는 것은 자국의 이권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함께'가 실천된다 할지라도 이것은 나를 위한 '함께'이지 남을 위한 '함께'는 아닙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경쟁과 소외가 반복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회가 '함께 세우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진 것은 얼마나 잘 한 일입니까. 소금처럼 자신을 녹임으로써, 빛처럼 타자를 밝힘으로써 '함께'를 이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지난 해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신앙경주에 있어서 부끄럽게도 표어로 제창한대로 '함께'를 실천하지도 못했고, 신앙을 발전시킬만한 대단한 사건도 일으키지를 못했습니다. 신앙과 관련해서 보면 올해도 역시 아무런 성장이 없이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앞에는 책망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경고를 들으십시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 6:7-8).

 우리는 보다 나은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9). 우리의 신앙은 날로 성장해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일입니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신앙은 상승하고 발전해야 합니다. 신앙의 상승과 발전은 끝까지 계속되어야 할 일입니다. 끝까지! 그래서 사도들은 성도들의 신앙이 끝까지 발전해 나가기를 소원했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는 것이라' (11).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신앙이 끝까지 성장하고 발전하겠습니까.



1. 신앙의 인물들을 본받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의 신앙이 끝까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하여는 신앙적인 인물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는 것이라' (12).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신앙의 길을 갔던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아직 미래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미 실현받은 것처럼 현실에서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만큼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것은 구체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공기를 손으로 잡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앞으로 영원한 나라에서 누리게 될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를 벌써 이 땅에서 맛보며 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는 것은 약속일 뿐 아니라 실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삽니다. 하나님 안에서 숨쉬고,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 말하고, 하나님 안에서 일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안에서 펼쳐집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숨을 주시고, 우리의 머리에 생각을 주시고, 우리의 입술에 말을 주시고, 우리의 손발에 일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펼쳐집니다. 이것이 신앙의 구체성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영적인 교감.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펼쳐지고, 하나님의 세계는 우리 앞에서 펼쳐집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될 약속이며 실현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앞으로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며 이미 완벽하게 맛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현실입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불황을 맞이하고 있는 이때 각 사업체마다 부도가 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부도를 알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믿음의 조상들은 오래 참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던 아브라함, 이방 땅에서 종살이와 옥살이를 하던 요셉, 우상을 섬기는 것을 거절했던 다니엘,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맛보았기에 현실의 고난 가운데서도 오래 참음으로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바로 이 같은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갈 때 우리의 신앙은 끝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몇 명만의 고독한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신앙의 길은 겨우 한 두 사람이 걸어간 불분명한 길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걸어간 분명한 길입니다. 이 길은 다지고 다져진 탄탄한 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이 간 길을 잘 따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의 선배들이 다져놓은 길을 감으로써 또 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가 있습니다. 영어를 배우는 사람이 펜맨쉽 (penmanship)을 잘 익히면 이후에 아름다운 글씨를 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길을 걸어감으로써 우리 뒤에 오는 신앙의 후배들을 위하여 더 다져진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2. 소망의 풍성

 둘째로 우리의 신앙이 끝까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하여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의 풍성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밝은 미래를 가지고 있습니까. 미국의 미래학자인 Alvin Toffler는 그가 쓴 '제 삼의 물결' (The Third Wave)라는 책에서 인류의 역사는 삼단계를 가지고 흘러왔다고 말합니다. 역사의 첫 번 째 물결은 농업사회였고, 두 번 째 물결은 산업사회였으며, 세 번 째 물결은 초산업사회라는 것입니다. 토플러는 제삼의 물결에서는 탈집중화와 탈획일화라는 특징이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하여 자유의지를 펼칠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의 미래가 열린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토플러의 예언은 아직도 제삼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이때 이미 맞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종족의 전쟁이나, 대륙전체를 강타하는 기근이나, 악랄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인질극,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불만족의 표식인 파업, 이런 것들을 보십시오. 특히 냉전적인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에서는 미래가 투명하다고 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소망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진정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고통스러운 종살이를 할 때에 주셨던 소망이며, 이스라엘이 바빌론에서 저주스러운 노예생활을 할 때 가졌던 소망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종살이를 할 때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노예생활을 할 때 소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파산의 지경에 이르렀을 때 소망을 가질 수가 있으며, 육체가 죽음의 질병에 빠졌을 때 소망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물질적인 파산과 육체적인 질병과 정신적인 쇠약을 극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물질이 소멸되어도, 우리의 육체가 깨뜨려져도, 우리의 정신이 마비되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로 붙잡으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풍성한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소망이 없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잊지 아니 하신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신앙이 끝까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하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아니 하신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행한 과거와 현재의 모든 수고를 낱낱이 기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성도를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 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형제를 섬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형제를 섬기지도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서 기억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주십니다. 이것은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영국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최고의 무공훈장이 있습니다. 그것은 빅토리아 십자훈장 (Victoria Cross)입니다. 이것은 1857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런던의 한 공원에서 영국을 위하여 장렬하게 싸운 전쟁용사들에게 처음에서 수여하였습니다. 여왕에게서 훈장을 받기 위하여 한 사람씩 단 위로 올라 왔는데, 마침 전쟁터에서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잃을 때까지 용감하게 싸워 큰 공로를 세운 한 군인이 여왕 앞에 올라와 섰습니다. 여왕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고 간신히 서 있는 그 군인을 바라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훈장을 떨어뜨리고 뒤로 돌아 서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웠습니다. 여왕은 수 천 명의 군인들을 등 뒤로 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마음을 진정시킨 여왕은 다시 돌아서서 훈장을 집어 용사의 가슴에 꽂아주며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군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의 여왕을 축복하소서. 여왕폐하와 조국을 위해서라면 이 몸을 다시 바쳐 싸우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도록 팔과 다리를 잃어버린 이 용사의 심금을 울린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저 찬란한 십자훈장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이 용사의 마음을 그토록 감동시킨 것은 조국을 위한 희생적인 충성을 뜨겁게 인정해준 여왕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영국여왕이 알아주는 것보다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신다면 얼마나 더 감동적인 일일까요. 성도들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잊지 아니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인내하는 근거는 하나님의 잊지 아니하심에 있습니다. 성도의 인내의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성도를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알아주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 해를 기다리고 있는 성도들이여 신앙의 경주에서 '끝까지' 나아갑시다. 더욱 신앙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하여 새 해를 부푼 마음을 가지고 기대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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