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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혹을 이기는 힘-하나님의 선하심 (약 0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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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대의 시험은 돈일 것입니다. 요즘 새로운 금융사고가 터져서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왔을 때 우리는 금융감독원을 통해 혹독한 개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정을 감시하고 적발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부정에 연루되어서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라고 예외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모두 연약합니다. 이 시대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예일 뿐입니다.

요즘은 돈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돈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돈이 성공의 척도요 인간가치의 척도가 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물질의 시험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이 시험을 이기기 위해 야고보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먼저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돈의 위력에 대해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위치에까지 와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당시는 아직까지 정신적인 가치가 존중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라면, 자본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재물의 영향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의 가치 vs 영혼의 가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할 것 중의 하나가 가치관입니다. 부와 가난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9-11절입니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우리가 이 세상의 시험을 극복하고 바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에 대한 태도, 부와 가난에 대한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낮은 형제는 자기 높음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낮은 형제’는 신분이 낮다는 뜻도 있지만 가난한 형제를 말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낙심하거나 비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등감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교만한 것도 문제지만, 가난 때문에 비굴해지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것도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가난하면 열등감과 비굴감을 갖기 쉽습니다. 진실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룩하고 의롭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난한 아버지가 못난 아버지는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물질이 없을 때 우리를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보는 관점으로, 가치로 볼 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귀중한 사람들입니다.

무가치한 영혼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장애가 있고 가난하고 세상에서 멸시를 받는다 할지라도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돈보다 귀중한 것이 많아야 합니다. 물론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에 대해서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돈보다 가치있는 것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정직과 진실, 사랑과 긍휼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덧붙혀 야고보는 부한 형제들에게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합니다. 부한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오히려 낮아짐을 자랑하십시오. 부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잘못 관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질의 부요함 때문에 하나님을 덜 사랑하고 열심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복이 아닙니다.

돈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육적인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돈이 주는 가장 큰 위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자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그것은 정말 잘 믿는 것입니다. 부자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우리를 어리석게 만듭니다. 부자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사실, 똑똑해야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부자에게 ‘어리석다’고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 땅의 것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을지라도 영혼이 부요하지 않는 사람은 가장 가난한 사람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의 일을 기억하십니까? 부자 청년은 나무랄 곳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돈도 있고, 영생을 갈급해 하고,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결국 돈을 따라갔습니다.
초대교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서에 보면 오네시모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도망친 노예는 죄인중의 죄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초대교회 감독 중의 하나가 됩니다. 노예도 감독이 될 수 있는 곳, 노예였던 감독에게 순종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믿음으로 얻는 면류관

돈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11절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돈이 있으면 망하지 않을 것 같지만 망합니다. 중동지역의 특징은 우기와 건기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비가 올 때는 갑자기 쏟아집니다. 그러면 메마른 땅에서 풀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소낙비가 지나고 나면 열풍이 불어옵니다. 그러면 새싹들이 한꺼번에 말라버립니다. 한 시간만 이 뜨거운 바람이 불면 모든 초목이 말라버립니다. 이것이 중동지역 기후의 특성입니다. ‘부’는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풀과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뼈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대기업들이 우리가 보는 가운데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졌습니까? 그것이 부와 물질의 속성입니다. 물질은 우리가 의지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은 감사함으로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 물질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면 안됩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고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쓸 때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는 물질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부와 가난이 문제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부유해도 가난해도 좌절하거나 교만하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빌립보서 4장 11-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가난한가 부자인가, 낮은가 높은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복, 영원한 복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들은 돈을 얻기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때는 주를 섬기는 일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 앞에 좌절하지 않고 믿음을 견고히 해서 따라가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련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냥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분량을 재고 계십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영원한 상입니다. 썩지도 않고, 빼앗기지도 않는 상입니다. 이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원한 상급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달려가면 물질의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13-15절입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비결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합니다. 세상 지식으로 무장하려고 사람들은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학원도 다니고 새벽부터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받는가는 이것을 안 다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으면 복은 따라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더 가까이 가느냐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아갈 때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험을 당할 때 꼭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심판하고 벌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부분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시험하셨다고 할 때의 시험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시험과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기 위해 시험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단련입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성숙을 위해, 온전케 하기 위해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잘못 행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시험당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내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요 자기 탓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험당할 때 회개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탓을 합니다. 아닙니다. 내 탓입니다. 하나님께는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우리 때문에 시험을 받고 계십니다.

욕심의 끝-사망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욕심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절대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낳습니다. 욕심은 망할 때까지 갑니다. 욕심을 차단하지 않고 절제하지 않으면 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태우고 맙니다.
욕심이 얼마나 우리를 어리석게 하는지는 에덴동산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의 자리였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말에 아담과 하와는 모든 것을 죄악 가운데로 몰아 넣었습니다. 욕심은 하나님이 되기까지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욕심의 정체입니다.
이 욕심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는 욕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전에 좋던 것이 이제는 값없게 보여야 합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요 거듭난 사람입니다. 예수 믿고 거듭나면 생각이 바뀌고 욕구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사도 바울도 자랑할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습니다. 예수님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어서 세상 즐거움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예수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믿지 않는 사람들은 허락되지 않는 것을 탐합니다. 그러나 거듭나면 건강한 욕구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바랍니다. 기도하기를 원하고, 사랑하기 원하고, 헌신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욕심과 시험으로부터 자유하려면 우리가 새 영과 마음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고 우리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우리도 마귀의 공격 대상이 됩니다. 욕심의 희생물이 되고 맙니다. 욕심에 지고 나면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비참해 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욕심을 따른 후의 초라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우리가 항상 새로워야 합니다. 마음이 거룩해지지 않으면 욕심과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십니다. 가끔 보면 우리는 이 마음 밭에 엉뚱한 것을 뿌립니다. 하나님이 잘 가꾸어 놓은 밭에 잡초를 심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정원을 잘 관리하십시오. 생각을 관리하십시오.

잠언 4장 23절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합니다. 돈, 건강은 지킬 줄 알지만 사람들은 마음을 지킬 줄 모릅니다. 모든 허망한 마음들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면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말씀으로 지켜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보혈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엉뚱한 것이 자리를 잡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것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 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위 아래 우리의 생각과 욕구와 가치관을 두는 것입니다.
키이스 인트레이터 목사님은 항상 반명함 크기의 종이를 들고 다닙니다. 거기에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들고 다니느냐고 했더니 시험을 이기기 위해 말씀을 읽고 암송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약한 부분은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약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말씀을 찾아서 늘 지니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자녀

16,17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야고보는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13절에도 하나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경계했지만 16,17절에 다시 한 번 ‘속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생각과 믿음으로 견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인의 특징은 하나님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굉장히 많습니다. 말씀으로 그것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편견과 오해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예수를 믿으면 재수가 없고 재앙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재앙을 주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좋은 것은 하나님만이 줄 수 있습니다.
세상이 좋은 것을 주는 것 같지만 속지 마십시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내게 하나를 주면서 열을 가져가는 곳이 세상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다 빼앗아가야 만족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것이 사단입니다. 좋은 것은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세상의 복은 근심과 두려움이 함께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다릅니다. 잠언 10장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온전한 복을 주십니다. 근심과 두려움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세상의 것이 좋아 보이지만 별 것 아닙니다.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 돈도 벌고 세상의 것을 가져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구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시련조차도 하나님은 선하게 바꾸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심판하십니다.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고치기 위해, 바꾸기 위해 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세상 인심은 변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18절입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 때 나 자신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인정과 명예 속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명예와 인정은 허망한 것입니다. 어제까지 박수를 치던 사람들이 오늘 돌아서서 욕하는 것이 세상의 명예입니다.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찾으십시오. 돈이나 명예, 세상에서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나’가 참된 자신입니다. 우리는 첫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좇아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존재요, 하나님의 소유된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결코 저주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귀중한 존재입니다. 세상의 평가로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마음을 지키고 말씀으로 이기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세상을 이기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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