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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삶 (벧전 0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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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존재이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주셔서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라는 사람의 일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태어난 지 석 달만에 갈대상자에 넣어져 나일강에 던져졌습니다. 강물이 흐르는 대로 흔들거리며 흘러가는 갈대상자 안에 누워있는 어린 모세의 일생은 석 달만에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갈대상자를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모세는 그대로 흘러가다가 지중해의 물고기 밥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때를 맞추어 애굽 왕 바로의 딸을 강가로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강물에 흘러가는 갈대상자 안의 아이를 발견하고 양자로 삼게 하셨습니다. 태어난 지 석 달만에 인생을 마감할 뻔했던 모세는 하루아침에 히브리 노예에서 애굽 공주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이제 모세는 애굽의 왕자 신분을 가지고 어쩌면 애굽 왕 바로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모세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하루는 모세가 자기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인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게되었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그 길로 달려가서 애굽사람을 때려죽였습니다. 그리고는 광야로 도망가서 양치는 목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하루종일 양들을 몰고 들로 산으로 다니며 살았습니다. 지난 날 애굽의 왕자로서 누리던 부귀와 영예도 다 사라지고 이제는 이렇게 양치는 목동으로 살다가 늙어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모세의 인생을 바꾸어 놓으십니다. 모세가 80세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꺼내어 가나안까지 인도하는 역할을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출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분명한 뜻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모세를 강물에 던져지게 하시고, 애굽의 왕자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양치는 목동으로 살게 하셨고, 이 모든 과정을 다 거치게 하신 다음에 비로소 모세를 이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목적,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 나일강에 던져진 모세처럼 위기 가운데 있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혹은 애굽의 왕자로 부귀와 영예를 누리던 모세처럼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이 사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분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또 어떤 분은 광야에서 양치는 모세처럼 낙심과 좌절과 포기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그 인생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들이 바쁘게 살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시기 바랍니다. 머리 속에 있는 복잡한 생각들도 잠시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시다. '내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 모습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과연 내 인생의 전부인가?' '내 인생의 사명과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다시 한번 여러분 인생의 목적을 깨닫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무엇을 위해 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가 마지막 때인 것을 깨달아 알라고 말씀합니다. 본문 7절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유 있게 해야 할 일이 있고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유 있게 해야 할 일을 급하게 하고, 급하게 해야 할 일을 여유 있게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세상 일에 대해서는 여유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빨리 돈을 벌어야지, 빨리 출세해야지, 이렇게 급하게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 28:20)' 빨리 부자가 되려고 하면 감옥에 들어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또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잠 20:21)' 말씀했습니다. 빨리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나중에는 빨리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성경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인생을 좀 여유 있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내 평생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하나님께서 입혀주시고,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믿고 좀더 여유 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반대로 급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 인생에 주어진 시간에 대해 여유 있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가진 건 시간밖에 없는데 뭐.' 이러시면 안됩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계산 할 때 앞에서부터 계산하지 말고 뒤에서부터 계산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뒤로부터 계산한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느 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시간을 뒤로부터 계산하며 사는 사람은 언제나 종말론적인 삶을 살게됩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큰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일전에 한국에서 어떤 돈 많은 재벌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분은 무일푼으로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을 일으킨 분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이 들어 경영일선에서 은퇴를 했는데 그 분 말씀이 이렇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에는 돈버느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몇 푼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즈음에는 이 재산을 어디에 사용할까를 생각합니다. 무엇인가 이 세상을 위해 한번 크게 사용하고 죽고 싶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 재산을 털어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만들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크게 생각합니다. 사랑을 해도 크게 사랑합니다. 작은 일에 얽매여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도 크게 용서합니다. 옛날에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 다 들추어내서 정죄하지 알습니다. 봉사를 해도 크게 합니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피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있었는데 이 청년은 자기 시력이 좋은 것이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노인들이 하는 말이 '나도 자네만 할 매는 눈이 참 좋았었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청년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좋은 두 눈을 한꺼번에 다 쓸 것이 아니라 하나만 쓰고, 하나는 붕대로 묶어 두었다가 노인이 된 다음에 써야지 하고는 청년시절을 한 눈으로 보냈습니다. 이윽고 노인이 되어서 써오던 눈이 잘 보이지 않자 가렸던 눈을 풀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진 건강, 내가 가진 물질, 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있을 때 사용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사랑을 베풀고, 남을 대접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8절은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말씀합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도 열심히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사업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열심히 사랑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열심히 사랑하는 일입니다. 열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열심으로 하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잘되지 않는 것을 될 때까지 열심히 반복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합니다. 여러분 중에도 부모님들이 그렇게 말리는 결혼을 하신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별 볼일도 없는 사람인데 그때는 왜 이 사람 없으면 못산다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결사적으로 말려도 결사적으로 합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사랑하라.'는 것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안되면 내일 또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모레 또 하고, 그래서 마침내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정대로만 살면 믿음생활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사단의 전략 중에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친한 사람끼리는 더 친하게 만들고, 미운 사람들끼리는 더 밉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편을 나누게 만들고 분쟁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열심히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사람과 두 번 만나면 먼 사람과도 한 번은 만나야 합니다. 열심히 만나고, 열심히 교제하고, 열심히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서로 대접하는 일입니다. 본문 9절은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말씀합니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든지 좋은 호텔도 있고, 또 값싼 숙박시설들이 있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숙박시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을 다니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나 특히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도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알아야 교회의 책임을 맡을 수 있다고 했고,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나그네를 영접하는 자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콩은 손님이 많이 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손님 중에는 미리 호텔을 예약하고 오는 분도 계시지만 대책 없이 오는 분도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선교사님들은 저한테 전화를 해서는 '몇 일에 홍콩에 가서 몇 일까지 머물 것입니다.' 당당하게 말씀하시고는 전화를 끊습니다. 그래서 공항까지 모시러 나가보면 온 가족들과 아울러 옆집에 사는 선교사님 가족까지 같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해서 며칠을 묵은 다음에는 이번에는 차비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마련해 드리면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 선교위원회가 고생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선교사님들을 대접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히브리서 13장에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도 있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손님을 대접하다 보면 그 중에 천사도 끼어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VIP로 오시는 손님보다는 초라하게 오시는 손님들을 더 정성껏 대접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천사가 VIP의 모습으로 올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VIP로 오신 분이 해양공원에 가자고 하면 '아, 거기 볼 것 없습니다. 괜히 더운데 고생이나 합니다.' 그러고, 선교사님들이 가자고 하면 모시고 가서 입장료 다 내드리고 모시고 다닙니다. 남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교회가 복을 받습니다. 특별히 본문 말씀은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남을 대접하되 아까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들은 남을 대접하는 일도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하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서울에서 목회를 하다가 중국선교에 뜻을 가지고 대만으로 건너가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본토에서 배운 제 중국어 실력을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분들은 다 아십니다. 그런데 교회를 사임하고 떠나올 때 미리 광고를 한 것이 아니라 떠나는 바로 그 주일에 교인들에게 광고를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 집사님 한 분이 다가오더니 손에 끼고있던 반지를 벗어서 제 아내에게 끼워주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분명히 그 반지는 그분에게는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인 것을 알기에 서슴없이 반지를 빼어서 사랑을 표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 같지만 차일피일 미루다가 기회를 잃어버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들이 누군가를 대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그것이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마음을 다해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는, 서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신 분들이 제일 괴로워하는 것은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가 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어느 부서에 소속이 되어서 열심히 일을 할 때에 거기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리 교회에 다녀도 기쁨이 없어.' 이런 분은 지금이라도 자원해서 봉사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신앙생활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내가 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반드시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를 몰라준다.' '내가 이렇게 시간과 물질을 바쳐서 봉사하는데 나를 우습게 본다.' 그래서 시험에 들고 넘어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말씀했습니다. 청지기는 자기 것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인이 준 것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청지기는 하나님이 주신 건강, 하나님이 주신 시간,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섭섭해 할 것도 없습니다. 본문 11절은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말씀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한국에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라는 제목의 43시간 짜리 코미디극이 상영된 일이 있습니다. 주인공으로 나온 안모라는 분은 장관에 임명된 것이 너무 기뻐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라는 취임사 초고를 기자들에게 돌리는 바람에 43시간만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감격했으면 그만큼 나이도 들고 그만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그랬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 같은 것을 불러서 목사로 사용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세 번씩 절을 해도 시원치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고백대로 죄인 중의 괴수와도 같고 만삭되지 못해서 난 자 같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청지기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더 열심히 사랑하고, 더 열심히 대접하고, 더 열심히 봉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을 돌아보며 충성된 청지기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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