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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높이와 크기 (막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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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높이와 크기(2:1-12)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클라이맥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살아도 주를 위하고 죽어서도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마가복음 2장에서는 어느 중풍병자와 예수님의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믿음 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인간의 모든 삶은 믿음에 기초해 살아갑니다. 인간의 하는 믿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경험을 통해 생긴 것이라기보다 지식과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관계와 비즈니스는 서로 믿지 못하면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믿지 못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르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사람을 고용해 놓고 그 사람을 믿지 못해 관리자를 두겠습니까. 이 뿐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자식도 믿지 못합니다. 결국 믿지 못해생기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씁니다. 돈 안 드는 사회는 신용사회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내 믿음보다 큰 타인의 믿음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혼돈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은 신념과 같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확신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철석같이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지식이나 이성 그리고 합리성에 근거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신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우리의 생각과는 정반대입니다.

 

며칠 후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다시 들어가시자 예수께서 집에 계신다는 소식이 퍼졌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던지 집 안은 물론 문 밖까지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때 네 사람이 한 중풍 환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1~3)

 

예수님께서는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는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당시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굉장히 신기해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사방에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소문을 퍼져 예수님을 보기 위해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사인해를 이룬 많은 사람들 가운데 중풍병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풍병자는 혼자 걸을 수도 나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네 친구들의 손에 들려서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는 믿음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은 중풍병자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친구들의 믿음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친구들이 여러분 주변에 많이 있어야합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닌 친구의 믿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서 중보기도의 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과 북한, 나아가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참 믿음은 타인을 위한 삶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에만 머물러 있습니다.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 오직 나를 위한 믿음, 내 병을 고치고, 우리 가정을 위한 기도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여러분, 작은 자, 가난한 자를 위하여 베푸는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던 믿음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무엇입니까. 그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을 바꾸십시오. 오직 예수님을 따라 가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은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처럼 타인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믿음 예수님을 따르는 것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께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예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훌륭한 능력이나 은사를 가진 목사나 예언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십시오.

 

요즘 우리 사회는 정의를 위해서 산다고 말합니다. 정의가 무엇입니까. 정의를 위해 사는 것이 믿음입니까. 요즘 우리나라의 교육, 사회 등 정말 많은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따라가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 가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문제가 생긴 친구들이 있으면 새벽기도 가자’, ‘예수님께 가자’, ‘목사님께 가자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을 찾는 것이고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어떻게 기도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입니다.

 

막힌 길 지붕을 뚫는 믿음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서 계신 곳 바로 위의 지붕을 뚫어 구멍을 내고 중풍 환자를 자리에 눕힌 채 달아 내렸습니다.”(4)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닌 타인의 문제로 예수님을 찾아갈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든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반드시 불가능이 있고 벽이 생겨 그 일을 포기하고 싶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흔들리지 마십시오. 그것이 믿음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길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 여기서 포기해야겠어라고 했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뚫고 전진해서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아무리 고민해도 갈 길을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발상 자체를 바꿔주십니다. 때때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발견해 넉넉히 해내는 경우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목표를 정했다면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생각하십시오.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면 벽을 뚫고 전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불가능을 뚫고 절망을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제게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가 믿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뚫고 나가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이 생기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들의 친구처럼 길이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지붕을 뚫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생각을 해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하더라도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힘, ‘불가능을 가능으로

 

우리 교회는 지난 25년 동안 한 번도 익숙한 일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 일을 우리에게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누가 한일을 따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지금껏 지내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참 신비스러운 일들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믿음으로 뚫고 나가면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으로 뚫고 나가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믿음입니다.

 

문제는 꿈과 비전이 없는 것입니다. 꿈과 비전이 있는 믿음은 바위도 뚫고 쇠도 뚫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사건을 경험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지붕을 뚫었다는 말씀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이 가능했을까요. 만약 중풍병자들의 친구들이 체면을 생각했다면 예수님께서 설교하고 있는 그 자리에 지붕을 뚫고 환자를 내려놓을 수 있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나 무모하고 몰상식한 행동입니까. 그러나 친구들은 체면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중풍병자인 친구를 낫게 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통한 것입니다. 막혀있던 길을 믿음으로 연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도 네 친구들의 믿음처럼 지붕을 뚫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막힌 길을 열고 없던 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힘과 돈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오직 믿음으로 뚫고 나가십시오. 가끔 저는 제 건강상태를 보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저는 교회를 계속해서 세울 것이고 세계 선교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포가 믿음입니다.

 

기적과 열매 만드는 헌신

 

요즘 선교에 헌신하는 청년들이 부족해 속이 상합니다. 우리 교회에 만 명의 청년들이 있는데 선교에 헌신한 사람 중에 청년들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청년시절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아프리카, 남미, 중앙아시아로 떠나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안전한 믿음은 없습니다. 장애물이 없는 믿음 또한 없습니다. 그렇지만 뚫고 나가야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담대한 믿음이 생기길 바랍니다. 포기하거나 뒤돌아서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떠나십시오. 믿음은 헌신입니다. 자신의 몸은 사리면서 말로만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또한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불평하면 문제가 해결됩니까.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해결할 방법이 정말로 없다면 지붕이라도 뚫을 정도의 믿음과 발상의 전환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기적은 일어나고 열매는 맺힐 것입니다.

 

여러분, 흔들리거나 의심하지 마십시오. 바람이 불어 흔들린다고 해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떤 분들은 자신의 병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모릅니다. 아픈 것만을 묵상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만 계속합니다.

 

여러분, 손을 펴고 일어나 눈을 뜨십시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병과 어려운 환경 그리고 불가능에 눌려 살면서 비겁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불가능을 뚫고 나갈 것인지에 대한 시금석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따라 가십시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믿음

 

오늘 본문에서 네 명의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지붕을 뚫기로 결정했습니다. 설교를 하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는 난감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깜짝 놀라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네 친구는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사람들의 눈에 신경 쓰지 말고 믿음으로 뚫고 나가십시오.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는지가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거기 앉아 있던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구나. 하나님 한 분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5~7)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부모님과 남편, 자녀들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로 갈등하는 문제는 내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셨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응답을 받으면 은혜를 받았고,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변덕을 부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됩니다. 개인의 문제는 자기를 포기하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자기중심으로 살지 않으면 모든 문제는 쉬워집니다.

 

또한 담대하게 승리의 함성 외치자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불가능을 무서워하지 말고 장애물이 오면 걷어 차 버리십시오. 온갖 어려움이 우리를 무너뜨릴 것 같아도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1%의 가능성이 있으면 99%의 불가능은 없어집니다. 때때로 99%의 불가능만 보고 위축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1%의 믿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고아원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을 걸어서 가야했답니다. 20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인데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산이 있어서 돌아가느라 한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이 설교를 듣고 하나님께 산을 없애달라고 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 산이 없어져서 20분만 걷게 해주세요어느 날 도시계획으로 산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병을 고쳐달라고 하며 고쳐주실 것이고 여러분의 친구의 병 또한 고쳐주실 것입니다. 이외에도 여러분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우리는 불가능과 장애물을 뚫고 승리할 것입니다.

 

믿음의 클라이맥스, 주님께 영광을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 죄가 용서받았다.’ 거기 앉아 있던 율법학자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구나. 하나님 한 분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5~7)

 

5절을 보면 믿음의 새로운 모습을 또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네 죄가 용서받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죄와 병은 상관이 있습니다. 물론 죄를 지어서 병든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지은 죄의 결과 일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죄와 치유는 상관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병을 고치는 것보다 용서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먼저 네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율법학자의 귀에 거슬렸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과 전통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집안에 왜 문제가 있습니까. 그 이유는 본인이 깨달아야합니다. 타인에 의해서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알게 되면 고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문제에 대한 원인을 깨달아야 고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결국 타인을 탓하면서 원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당시 사람들 모두가 손가락질을 했습니다.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데 죄 사함을 이야기하자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느낀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신앙의 한계와 선입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신학보다 크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놓으십시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뜻에 하나님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맞춰 응답하실 것입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자란 후에야 태어나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율법학자들의 종교정의입니다. 자신들이 전통적으로 지켜 온 믿음대로 따르지 않으니까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큽니까. 아니면 전통이 큽니까.

 

예수께서는 이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마음으로 곧 알아채시고 율법학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 중풍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는 말 중 어떤 말이 더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그리고 예수께서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중풍 환자는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런 일은 난생 처음 본다!’고 말했습니다.”(8~12)

 

믿음의 클라이맥스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기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포인트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며 완성됩니다. 믿음은 살아도 주를 위하고 죽어서도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본질인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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