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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롱하고 반대하는 사람들 (느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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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하고 반대하는 사람들(4:12)

 

교회의 역할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온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 싸울 때 승리하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과 싸울 때 지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위협에 굴복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협박이나 소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느헤미야의 기도와 비전과 용기와 지혜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다백성들, 특별히 절망하고 좌절하고 희망을 포기해 버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어려운 문제인가, 쉬운 문제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쉬워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이면 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힘을 합하고 마음을 모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불가능해 보여도 죽은 나무에 꽃이 피듯이 살아납니다. 생명의 싹이 돋고 부활이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세 부류의 사람

 

오늘 본문에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유다백성들의 의연한 결의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41절부터 3절을 읽겠습니다. “산발랏은 우리가 성벽을 쌓는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고 몹시 분개했습니다. 그는 유다 사람들을 조롱하며 그의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저 유다 사람 약골들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 그 성벽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냐? 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냐? 하루 만에 공사를 끝내겠다는 것이냐? 타버린 돌들을 저 흙무더기 속에서 원상 복구하겠단 말이냐?’ 그 곁에 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맞장구치며 말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건축하든 여우라도 한 마리 올라가면 그 돌 성벽이 다 허물어질 것이다!’”

 

여기 반대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사마리아의 통치자였던 산발랏입니다. 아마 이 사람이 반대세력의 주모자였을 것입니다. 그는 사마리아인이었는데 자기통치영역이 침범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했습니다.

 

두 번째는 반대하는 사람의 말에 맞장구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암몬 사람 도비야입니다.

 

세 번째는 함께 무리지어서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아라비아 사람들과 아스도 사람들입니다(7).

 

반대와 조롱 속에서도

기도하는 느헤미야

 

반대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첫 번째, 몹시 분노하고 조롱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모두 박수쳐주지 않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선한 일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모두 박수쳐 주지 않습니다. 반대는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두 번째는 감정적이라는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의 특징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왜 반대합니까? 내가 상대방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반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화를 내고 분노하는 것만큼 내용이 없습니다. 본인은 굉장히 큰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화낼 일도, 분노할 일도 아닌데 화를 내고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반대와 조롱과 비난 속에서도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고자질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일에 반대하는 사람과 대립하거나 논쟁하거나 싸우지 않았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원하는 게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싸우지 않는 대신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 모든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역시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때에도,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4~5절을 읽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가 멸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소서. 그들이 포로가 돼 남의 땅으로 끌려가게 하소서. 그들의 죄악을 덮지 마시고 그들의 죄를 주 앞에서 지우지 마소서. 그들은 우리 앞에서 주의 얼굴에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우물쭈물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굉장히 단호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약간 갈등을 느끼는 게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좋은데 그 기도의 내용을 보니까 반대자들을 저주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는데, 느헤미야의 저주하는 기도가 걸리는 것입니다. 시편을 읽어보면 이런 기도가 계속 나옵니다. 시편 기자들은 너무나 설움을 많이 받고 비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원수를 갚아달라는 탄원시 형식의 기도를 합니다.

 

예를 들면 시편 37절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내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주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턱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숴 주소서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함을 받고 조롱당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면 고난이 옵니다. 믿음을 가지면 고난도 사라지고 병도 사라지고 인생의 모순들이 다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잘 자랄 때에도 때로는 거센 비바람도 맞고 태풍도 맞고 흔들림을 당하면서 거목이 되는 것입니다. 온실에서 자라는 꽃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거센 비바람을 맞고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처럼 우리의 믿음도 고난 속에서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목적이 되어야

 

그런데 시편에 나오는 탄원시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왜 저주하는 기도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닙니다. 나한테 욕하고 나를 배신하고 조롱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가 수모를 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전이 훼파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면 참지 못합니다.

 

느헤미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욕하고 무시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자기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무시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악한 자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기세등등합니다.

 

6절부터 8절까지 읽겠습니다.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열심히 일한 결과 우리는 성벽 전체를 절반 높이까지 복구했습니다. 그러나 산발랏과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복원돼 허물어진 부분들이 점점 메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음모를 꾸미고 예루살렘에 와서 싸우고 훼방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와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고 마음을 하나로 모았을 때, 전략적으로 성 쌓는 것을 구분하고, 은사에 따라 일했을 때 성벽이 순식간에 50%나 올라갔습니다. 무서운 속도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려고 계획을 세워보십시오. 불가능에 도전해 보십시오. 순식간에 50%가 올라갑니다. 내 마음이 안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그리스도인

 

9절을 읽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편, 밤낮으로 경비병을 세워 이 위협에 대비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를 선택합니다.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비병을 세워서 성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막아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크리스천들이 살아가야 하는 태도입니다. 은혜 받고 예수 믿었다고 기도원에 가서 살면 안 됩니다. 세상에 나와서 가정을 돌봐야 하고 일도 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다고 기도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면 세상은 누가 돌보겠습니까.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세상일만 하면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일하는 직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은 여러분의 선교지입니다. 여러분 모두 선교사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군대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손을 높이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 군대가 이겼습니다.

 

교회의 역할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온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 싸울 때 승리하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악과 싸울 때 지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반대자들의 위협에 굴복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

 

여러분, 외부세력의 반대는 무섭지 않습니다. 밖에서 나를 공격하는 것은 무섭지 않습니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공격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밖에서 누가 우리 집을 공격하면 가족 모두 똘똘 뭉치면 됩니다. 그런데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나면 그때는 너무 힘듭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 읽겠습니다. “그런데 유다에 있는 사람들은 할 일은 아직 산더미 같은데 일꾼들의 힘이 다 빠져 버려 우리가 성벽을 쌓을 수가 없다라고 불평했습니다. 또 우리의 원수들은 그들이 알아채기 전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들어가서 그들을 죽이고 그 일을 중단시켜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 가까이 사는 유다 사람들도 우리에게 와서 그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치려 한다고 열 번씩이나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고도 뒤돌아서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불평의 목소리가 들립니다(10). 또 원수들이 협박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11). 믿음이 없는 사람은 협박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협박을 해도 그 소리가 작게 들립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그 협박이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일에 근심걱정이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우리의 믿음이 작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은 태풍이 불고 폭풍이 몰아치고 아무리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새집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기적을 만드는 것은 믿음입니다. 병이 낫는 것도, 우리의 구원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반대하는 사람들은 실제 사실보다 열배 이상 부풀려 소문을 냅니다. 그래서 소문이 더 커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소문이 퍼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알고 보면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 협박이나 소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태양이 안 보인다고해서 태양이 없는 게 아닙니다. 구름이 잠깐 가렸을 뿐입니다. 구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구름은 지나가게 돼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은 다시 빛나게 돼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통로를 지나갈 때 동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통로를 지나가는 것입니다. 막힌 곳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빠져나오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여러분들은 역사의 주인공들이요, 하나님나라의 주인공들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통로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오른손을 잡아주시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십니다(41:13). 여러분의 귀에,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이 말씀이 들려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 위기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귀가 유혹하는 대로 실망하고 눈물을 흘리고 절망하시겠습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터널을 뚫고 나오겠습니까.

 

이사야 4318~19절을 읽겠습니다.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지 말라.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고 있다! 이제 막 솟아나고 있는데 너희는 느끼지 못하느냐?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만들고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사막에 아무리 길을 내도 모래바람이 한 번 불면 길이 없어집니다. 그래도 그 사막에 길을 내고 강을 만드는 분이 바로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는 빛으로 오셨고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빛이 오고 생명이 옵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완성하신 분이고 정의를 완성하신 분입니다. 그것이 바로 용서와 화해입니다. 한편으로 기도하고, 한편으로 파수꾼이 되어 성벽을 지키는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한편으로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한편으로는 용서와 사랑의 사도가 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순간부터 승리하십시오.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자가 되십시오. 믿음이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최근 내 주변에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 이 문제들을 주님께 가져옵니다. 반대자들의 모든 입을 막아주시고, 반대자들의 모든 음모를 끊어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축복해 주시고 우리에게 믿음과 용기를 주셔서 승리하게 하옵소서. 뒤돌아서지 말게 하시고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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