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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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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이 한창일 때, 외국 손님 한 사람이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전 세계 챔피언이었던 복서 맨니시입니다. 영화 ‘챔피언’의 시사회에 참석하러 온 것입니다. 그는 영화를 보고 나서 기자들에게 이제야 김득구 선수에게 짐 빚을 갚은 기분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자기의 주먹에 맞아 죽은 한국의 헝그리 복서가 눈앞에 어른거려 한 동안 잠을 못 이루었을 정도로 정신적인 부담을 씻을 수가 없었나 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김득구 선수는 전형적인 헝그리 복서입니다. 어린 시절 가출해서 화장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로 배를 채우기도 하고, 때로는 피를 팔아 겨우 연명할 수밖에 없었던 고난의 시절을 그는 권투로 새 인생을 개척해 나갑니다. 변변히 먹지도 못하면서 낮에는 공사장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샌드백을 치며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동양 챔피언이 되던 날, 승리를 전하기 위해 금의환향, 목에는 촌스럽기 그지없는 거창한 꽃다발을 걸고 고향 초등학교에서 연설합니다. 대사를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강 이런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배운 것도 없고, 남들처럼 가진 것도 없고, 사랑받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굶기를 밥 먹듯 했지만, 나는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에게는 저 넓은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면 붉은 해가 솟아오르는 저 바다가 곁에 있는데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이겨 나갈 때 진정한 챔피언이 된다는 권투사범의 가르침으로 그는 세계를 맨주먹으로 두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뱃속에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채 사각의 정글링 위에서 그는 진정으로 자신을 이긴 챔피언의 최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목이 메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부자들의 거만과 교만과 차별은 참을 수가 없는 역겨움입니다. 확실히 그런 부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왜 깜짝 놀랐을까요? 그들도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었을 텐데, 아마 가진 것이 없다 뿐이지 부자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난한 사람들은 많지만 부자가 되지 못했다 뿐이지 그 탐욕과 집착이 같다면 부자나 다를 바가 없기에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겠지요.
 부자는 악, 가난한 자는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도식은 절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추하고 악한 죄의 굴레를 벗어나는 진정한 가난은 하나님이 아시겠지요.

「생활과 묵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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