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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부패한 감정의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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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5).

 성경은 사랑을 성내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좀더 원문에 가깝게 이해하려면 ‘날카롭게 되지 아니하며’ 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도 이 구절을 ‘도발되지 아니하며’, ‘격동되지 아니하며’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즉, 사랑은 무엇에 자극을 받아서 날카롭게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성내지 않는 성품이 아무것에 의해서도 자극받지 않는 요지부동의 성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과연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의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이야기하는 ‘성냄’은 외부적으로 자극을 했을 때, 그 자극이 자극을 받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부패한 본성과 맞닥뜨리면서 일어나는 폭발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세례 요한이나 여러 선지자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되는 거룩한 분노와는 다릅니다. 거룩한 분노는 외부의 자극이 부패한 인간의 본성 속에 있는 포악한 기질을 건드려서 폭발한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새로운 본성을 공격해서 일어나는 불순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내지 아니한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에 격동되어 부패한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성내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감자 썩히는 광경이 떠오릅니다. 찰기 있는 감자떡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독에 물과 감자를 넣고 썩히는데, 독에 매달려 들여다보면 제법 맑은 물이 하얗게 담겨져 있어 깨끗하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얗고 말간 물도 기다란 막대를 넣어 막 쑤시면, 금세 썩은 감자와 온갖 찌꺼기들이 위로 떠오르면서 쳐다보기 고약할 정도로 흉하게 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된 사람은 막대기를 넣어 아무리 쑤셔도 더러운 본성들이 표출되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리 휘저어도 늘 맑은 물과 같이 깨끗하고 고요합니다. 그의 더러운 본성들이 이미 하나님의 사랑으로 정제되고 통제되었기에,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격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분하고 서운한 일을 당해도 잠잠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묵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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