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남아있는 ‘화’의 불씨

첨부 1




 가끔 심하게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누군가 나에게 왜 화를 내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건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르고 열이 가라앉은 다음 누군가 저에게 다시 묻는다면 “화를 낸 것이 후회가 됩니다. 내가 화를 내 보아야 내 손해일 뿐이네요. 내 속만 상하지요.”라고 할 것입니다.
‘화’가 마음에 상처를 낸 것입니다. 상처 입은 그 마음은 화를 내게 했던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 하려고 합니다. 상처의 연속입니다. 휘발유는 한 번 타오르면 그만이지만 휘발유보다도 더 빨리 타오르는 화는 한번 타오르고 미움으로 그리고 무관심으로 끈질기게 그 불씨를 남겨 둡니다.
 저는 ‘왜 화가 났을까?’를 가지고 사흘 동안 끈질기게 생각을 몰아쳐 해 본적이 있습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왜 화를 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불같이 화를 냈던 그 상황을 되새겨 보면서 ‘나는 화를 낼 수밖에 없었고 누구든지 그 상황에서는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사람이 저에게 한 것이 너무나도 괘씸하고 억울하고 저를 무시한 것이고…. 화를 낼 이유는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저 스스로에게 또 묻습니다.
 “그런데, 꼭 화를 내야만 했을까?….”
 이렇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면 할수록 화를 내야만 할 명백한 이유들은 하나하나 사라지고 맙니다. ‘그 사람이 나를 무시했다고 해서 내가 왜 화를 내야 하지?’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다만 내 안에 사랑이 부족했다는 반성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은 화를 잘 내고 상처를 받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 주어라.”
 저의 경우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은 ‘화’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화가 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울 때는 화가 나지 않습니다. 사랑이 크면 화가 밀고 들어오지를 못합니다. 이럴 때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의 잘못을 타일러 줄 수 있고 상대방도 곧 수긍을 하고는 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타이르려고 할 때 내 안에 ‘화’가 도사리고 있는 한 화해는 없습니다. 그 사람의 잘못을 타이르려고 하기 전에 우선 나 자신을 타일러야 합니다. 내 안에 ‘화’의 불씨가 남아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에게 사랑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나에게 잘못한 사람과 화해하지 않고 화의 자식인 미움과 무관심에 사로 잡혀 있는 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해하면 하늘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생활과 묵상2」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