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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자유는 선택받는 것이라기보다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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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1-32).

 워싱턴 D.C.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백악관의 맞은편에 위치한 제퍼슨 기념관을 방문하게 됩니다. 제퍼슨은 미국의 3대 대통령으로 미국 헌법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공헌하였습니다. 이 원형 기념관 벽에는 미국 헌법의 기본 정신이 새겨져 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자유를 우리에게 주셨다’고 쓰여 있습니다.
 자유를 표현하는 영어에는 ‘Liberty`와 ‘Freedom` 두 가지가 있습니다. ‘Liberty`는 외부로부터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민의 권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Freedom`은 본래 철학 용어로 완전한 개인적 자유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Liberty)안에서 어떠한 자유(Freedom)를 누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들의 자유에 대한 의무와 책임으로 나타는 것입니다.
 세르어는 그의 논문 「자유의 곤궁」에서 현대인은 세 가지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스스로 노예가 되어 귀중한 자유를 불행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양심의 상실, 이웃의 상실, 그리고 하나님의 상실입니다. 자유를 구속받는 대표적인 사람이 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종의 의미를 사람의 신분에 국한시키지 않으시고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물과 인간의 기본적인 차이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동물은 본능에 의해 행동하지만 사람은 선택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선택하며 산다는 것이 곧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한 것이 모두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선택만이 자유를 보장합니다. 죄를 선택하면 죄의 노예가 됩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면 그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유는 진리 안에 있습니다. 진리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응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일년 일독 매일 묵상」,주경로

 
단순하고도 진지한 결단

 헌신은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기로 결단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조금이라도 자기 것을 움켜쥘 수 없다. 주께서는 “나는 너의 전부를 원한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소용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헌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커다란 싸움을 경험하게 된다.
 헌신은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력에게 명백한 위협이다. 세상은 싸움도 하지 않고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주 예수님, 저의 몸을 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자동적으로 세상적인 말, 세상적인 생각, 세상적인 일을 향해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 된다. 헌신의 결단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세상에 매료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감사하게도 주께서는 나를 위기의 시점에 이르도록 하셨다. 마치 하나님이 “루이스, 몇 주일만 더 이렇게 산다면 너는 끝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끝을 보았고, 몇 년 간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그리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무릎을 꿇고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 저의 삶을 당신께 드려 당신을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단순하고도 진지한 결단을 내린 후 내 삶은 급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려야 할 하나님의 부흥」,루이스 팔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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