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노인의 영광

첨부 1




 빛으로 가는 길 가운데 하나는 소원(wish)을 천천히 희망(hope)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즉 이것저것 "밖에 있는 것"(that)을 소원하지만, 희망은 "안에"(in) 있습니다. 소원은 자동차나 집이나 승진이나 재물처럼 구체적인 대상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앞이 열린 것이어서 상대방이 약속을 이루어 주리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희망은 마치 눈 덮인 들판 위로 흘러가는 교회의 종소리 같은 것입니다.
 소원에 바탕을 둔 혼인생활은 끊임없는 위험을 만나지만, 희망에 바탕을 두면 온갖 가능성을 지닌 자유로운 앞이 열립니다. 왜냐하면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이나 가진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부가 서로 귀중이 여기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소원을 희망으로 바꾸려면 이 순간 크고 작은 물건으로부터 스스로 초연하게 떠나서 천천히 앞날을 향하여 우리의 두 팔을 벌리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로벗 캐스탠바움(Robert Kastenbaum)이 이 사회가 "늙었다"고 딱지를 붙인 노인에게 이러한 바꿈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한 것은 옳은 일입니다. 희망을 낳는 떠남은 "중년기부터 시간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가능합니다. 칼 융(C. G. Jung)은 삶의 주기 가운데 중년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한낮은 자기의 모든 힘과 모든 뜻을 다하여 일하는 데 온 마음과 온 힘을 다 쏟는 자기전개의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바로 황혼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즉 인생의 나머지 반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낮부터 날이 기울기 시작하여, 아침의 모든 꿈과 모든 가치의 뒤바꿈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생은 언제나 욕망을 버리고, 방향을 바꾸며, 목표를 다시 정하라고 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친구를 잃고, 관계가 깨지거나, 아니면 새로운 계획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보는 눈을 넓혀야 하고, 날마다 소원하는 얕은 물결 밑에 깊은 희망의 흐름을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언제나 인생에 시달리며, "새롭게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늙기 전에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뒷날 늙었을 때 그러한 일이 생기라고 바랄 수 없습니다.
 희망이 자라갈 때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것은 물론 지금 우리 모습 이대로 값이 있다는 것을 천천히 알게 됩니다. 우리 인생이 쓸모없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뜻은 얻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옛 도교 이야기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몹시 늙었고 옹이 박혀 비꼬인 커다란 참나무를 찾은 목수와 그 제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목수가 그 제자에게, "너는 이 나무가 왜 이렇게 크고 늙었는지 아느냐?" 하고 물었다. 제자는, "모르겠는데요… 왜 그렇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목수는, "그건 쓸모없기 때문이다. 쓸모 있는 것이었다면 벌써 베어서 켠 다음 침대나 밥상이나 의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자라게 내버려 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나무 그늘 밑에 네가 쉴 수 있을 만큼 크게 된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나무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롭게 빛을 향하여 자라가도록 내버려 둔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희망이 지닌 힘입니다.

「노인의 영광은 백발」,헨리 나우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