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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말씀 위에 세워지는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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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위기를 겪고 있는 믿는 가정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그들이 여러 가지 면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같은 그런 문제와 투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깊은 사색의 숲을 터벅터벅 걷기도 하지만 그들 마음속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자리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없다. 그들은 그분의 실존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기도가 즉각적으로 문제를 완화시키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식으로 넘겨짚고 만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옳게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기 느낌은 상당히 믿는 듯한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는 하나님의 약속은 거의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오늘 엠마오로 가는 그 먼지 나는 길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거나, 지금 처한 환경이 당신을 혼돈과 좌절로 몰아넣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러한 처지에 있다는 증거라고 가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다시 말해 그분이 나에게 손 한번 내밀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것은 느낌일 뿐이다. 분명 아무 의미도 없다. 그분의 말씀은 어떤 경우라도 인간의 나약한 느낌에 기초한 정서와 비교가 안될 만큼 확실하다. 그 신뢰도의 무한함은 믿어도 좋다. 많은 글을 발표했던 르우벤 웰치 목사는 “하나님과 함께 지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조차도 뭔가 나타나심을 느낄 수 있다”고 언젠가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기도가 텅 빈 우주에서 되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조차도 주님은 독특한 그분만의 방식으로 일하신다. 기초를 세우되 시시각각으로 돌변하는 감정이 아닌, 기록된 말씀의 권위 위에 세워야 한다.

?하나님 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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