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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용서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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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6).

 어떤 사람들이 “기독교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다 용서해 준다는데 그렇게 되면 부도덕을 조장하는 결과가 되지 않느냐. 기독교는 부도덕의 종교다.”라고 비평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가 값도 없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용서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용서받은 자가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해 준 자가 대가를 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6백 년 전에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5,6)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은 이마에 흘러내린 피가 눈에 들어와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쇠못에 박힌 양손에서 흘러내린 피는 가슴을 적시고 있었고, 양발에서 떨어지는 피는 불모(不毛)의 골고다 산정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땀이 비 오듯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렸습니다. 원수들은 밑에서 머리를 흔들고 침을 뱉으며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조롱합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얼굴을 돌리셨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처참한 절규가 하늘과 땅을 진동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께서 왜 온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여러분과 나의 죄를 요서해 주셨기 때문에 그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 산고(産苦)를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바치는 대가가 지불된 것입니다. 용서에는 이처럼 큰 희생의 대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는 부도덕을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에는 이미 대가가 지불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아버지 앞에 어엿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주님과 함께 변화를 받아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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