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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의 일, 나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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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세기 전, 한 젊은 영국 여자가 선교사로 인도에 갔다. 그녀의 이름은 애미 카마이컬이었다. 그녀가 인도에 도착해서 배에서 내린 후, 그녀가 목격한 것들 때문에 그녀는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사원의 소녀들이 취급되는 모습이었다. 인도에서 힌두교 남자가 죽으면 그의 부인도 죽은 남편과 함께 화장된다. 그 결과 그 자녀들은 졸지에 고아가 된다. 남자 아이들은 경제적인 가치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척들이 그들을 데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문제가 다르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소녀들은 힌두교 사원으로 인도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거기서 그들은 창녀처럼 이용되었다. 애미 카마이컬의 마음은 그런 소녀들 때문에 아팠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 소녀들을 사원 밖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다면 그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그녀는 그런 사원의 소녀들을 위하여 고아원과 학교를 시작하였다. 그녀의 계획은 힌두교 승려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승려들은 힌두교 사업가를 찾아가서 말했다. "당신은 이 외국인 여자가 하는 일을 중단시키시오." 그 힌두교 사업가는 영국인 사업가를 찾아가서 말했다. "당신나라 사람 중 한 사람이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어요." 그 영국 사업가는 영국 선교사들에게 찾아가서 말했다. " 선교사들 중 한 사람이 우리에게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그녀를 중단시키시오." 그러자 애미 카마이컬의 영국 동료 선교사들이 그녀에게 와서 말했다. "당신은 이것을 중단하시오." "그 소녀들은 어떻게 해요?" 애미가 물었다. "안 됐지만 그것은 우리의 문제가 아니오." 그 즈음, 그녀는 그들이 학교에서 빼앗아 간 한 소녀를 돌아오게 하려고 어느 사원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 사원에 있는 승려는 종교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도 최소한 인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승려를 찾아가서 소녀를 돌려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녀는 말했다. "만일 당신이 그 소녀를 돌려주면, 우리는 그 소녀를 교육시키고 준비시킬 것이고, 그 소녀는 나라를 위하여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승려의 얼굴에 나타난 냉혹한 모습과 그 눈에서 흘러나오는 고집을 보고 그가 그 소녀를 풀어주지 않을 것을 읽을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사원의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그래서 애미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반대하는구나.` 그녀는 방으로 가서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호소했다. "주님,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두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도 없었습니다. 저는 포기합니다. 이 일은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애미 카마이컬은 갑자기 주님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계셨는데, 감람나무 아래가 아니었다. - 그분은 인도의 타마린드나무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계셨다! 그녀는 예수님의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은 그녀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그렇다. 애미, 그것은 너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너의 짐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문제이고 나의 짐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짐을 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단다."
 그 후, 애미 카마이컬은 다시 팔을 걷어 부치고 그 여자들을 구출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여자 아이들을 무지와 질병과 사원의 매춘에서 구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만일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그 부담감이 우리의 마음에서 발동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내가 짐을 질 수 있도록 나를 돕지 않겠니?" 만일 우리가 그분에게 예라고 말씀드리고 그 짐을 우리의 마음 안으로 가지고 오면, 우리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들어간다는 말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열쇠가 다른 사람 안에 있으므로, 당신은 다른 어떤 사람의 구원의 열쇠도 당신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리스도의 짐을 당신의 짐으로 삼을 때뿐이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로 하여금 당신 안에서 그 일을 하시게 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처럼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죽음의 상징이지만, 생명에 대한 아주 강력한 상징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구속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자. 우리는 그분에게 전적으로 예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 데니스 킨로 저 / 홍성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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