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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죄의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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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11).

 언젠가 어느 인권변호사로부터 식사를 대접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민주화 투사들을 위해 무료 변론도 많이 해 주신 분이었는데, 대화를 나누다 문득 세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세금 이야기가 나오자 크게 한숨을 쉬며 “목사님, 그것만은 정말 못 하겠습니다. 저는 세금을 정직하게 신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인권 변호를 선택했다고 하면서 세금 문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크기와 결과를 속여, 신자로 하여금 어느 특정한 죄악에 대해서 너그러워지게 하는 죄의 속임입니다. 죄가 특정한 죄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하도록 신자를 속이는 것입니다.
 죄의 이러한 속임의 작용은 사실 우리 주위에서 아주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쉽게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탈세하는 사람들은 탈세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폭력은 아주 사소한 문제지만 도둑질은 매우 심각한 죄라고 생각하고,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자신은 적은 것을 훔치므로 사소한 범죄자라고 생각하며 몇 십 억씩 뇌물을 받는 정치인들을 성토합니다.
 죄는 이렇게 사람들을 속입니다. 죄의 속임으로 인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죄의 구별과 기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밥알을 남기는 것을 큰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밥을 공기 채 버려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훔치는 것은 아주 파렴치한 행위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입장과 자신의 편의에 맞춰 마음속으로 죄의 기준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크게 생각하고, 작게 생각하고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죄의 기준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의 크기를 판별하고, 중대한 죄와 사소한 죄를 나누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하기 위한 죄의 속임수일 뿐입니다. 따라서 거기에 속아 특정한 죄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것은, 죄에 속임수에 빠져 자신을 그 죄에 개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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