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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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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왕하 17:33).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영원한 삶으로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진리이고 이 진리는 끝없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애굽에서 섬겼던 신들을 생각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나 후에도 하나님께서 명령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고 가나안 토속 종교와 인접 국가의 신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왕과 백성들이 늘어났습니다. 성경은 세워진 왕과 인물들을 하나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순종하였는지의 여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왕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 지라”는 지적을 계속해서 받았습니다. “여로보암의 죄”의 의미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산당을 짓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대신 우상을 숭배하게 한 죄를 의미합니다.
 현대 문화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늘날에는 진리 자체보다도 다원론과 다양성을 더 높은 덕으로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대우받는 시대에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신념을 진리로 대우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는 편협한 종교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오만한 종교로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더 위험한 생각은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믿음만 있으면 되고, 그 다음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의 선택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신이 좋아하는 생각과 취향대로 각색되어 진리로 주장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란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에 잘 적응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무속 신앙도 인정하고, 하나님도 열심히 섬기는 신앙은 이미 진리를 떠난 믿음입니다. 진리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지, 진리를 자기 편리하나 대로 해석하여 따르는 신념은 믿음이 아닙니다. 진리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 일년 일독 매일 묵상?, 주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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