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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글로벌 시계메이커 크로노스위스 게르트 랑 회장의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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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스위스 시계업계는 '그로기' 상태였다. 1970년대 중반 세이코 등 일본업체들이 내놓은 쿼츠시계(배터리에서 동력을 얻는 전자식 시계) 탓이었다.

쿼츠시계는 500년 역사의 기계식 시계(태엽을 감거나 손목의 움직임으로 동력을 얻는 시계)를 모든 면에서 압도했다. 훨씬 더 정확하고 가벼운데도 가격은 10분의 1에 불과했다. 100년 역사의 기계식 시계 메이커들은 앞다퉈 쿼츠시계를 만들기 시작했고,시계에 인생을 바쳤던 장인들은 실업자 신세가 됐다.

당시 30대 후반이던 독일 출신 시계 장인 게르트 랑도 '쿼츠 크라이시스(위기)'에 휩쓸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스위스 시계 메이커 태그호이어에서 15년간 일했던 그도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다. 동료들은 새 길을 찾아 떠났지만 그는 달랐다. "기계식 시계 없이는 내 인생도 없다"며 쿼츠 열풍이 절정이던 1982년 전 재산을 털어 기계식 시계 제작사를 차린 것.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며 바보 취급을 받던 랑은 29년이 흐른 지금,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계 메이커 중 하나로 꼽히는 크로노스위스의 창업주이자 '마스터 워치메이커'(최고 시계장인)가 됐다.

최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바젤 시계박람회'에서 만난 랑 회장(68)은 1982년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도 했죠.PC시대에 타이프라이터 회사를 차리겠다고 했으니….그때 저는 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사실 달리 할 것도 없었고요. 갑자기 미용기술을 배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나의 열정이 가리키는 길로 가보자.그러다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란 생각만으로 도전한 겁니다. "

랑 회장은 "창업 후 6~7년 동안 과거에 다른 브랜드 제품을 샀던 사람들의 구식시계를 고쳐주며 받은 수입으로 근근이 버텼다"며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거짓말 같이 기계식 시계의 인기가 되살아났다"고 설명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었던 데 대한 보상은 컸다. 쿼츠에 전념하느라 기계식을 접었던 대다수 업체들은 예상치 못한 '기계식 시계 붐'에 회사를 재정비하느라 허둥댔지만,크로노스위스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혁신적인 제품들로 1980년대 말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1990년대 이후엔 권위 있는 시계잡지와 단체들이 주는 '올해의 시계상'을 수차례 받을 정도로 업계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랑 회장은 "아직도 스스로를 비즈니스맨이라기보다는 워치메이커라고 생각한다"며 "에너지가 남아 있는 한 (은퇴하지 않고) 평생 워치메이커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들어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리치몬트 등 대기업들이 군소 명품업체들을 앞다퉈 사들이는 데 대해 "주인이 바뀌면 브랜드의 철학과 스타일까지 함께 변색되는 경우가 많다"며 "크로노스위스도 많은 인수 제안을 받았지만 우리만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고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돈만 생각했다면 애당초 그 시절에 크로노스위스를 설립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랑 회장에게 "어려움을 무릅쓰고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달라"고 청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꿈을 꾸십시오.그러다보면 좋은 결과가 찾아올 것입니다. (손목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귀를 대보세요. 틱톡,틱톡 소리가 들리죠? 바로 저의 심장 뛰는 소리예요. 다른 사람에게 제 심장을 나눠주는 일,멋있지 않나요?"
 

2011-04-07 한국 경제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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