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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내의 한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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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341.사내의 한 생애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사내의 한 생애는 한 마디로 돈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아, 돈이 없다면 돈 보다 더 거룩하다는 그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지 생각하여 보아라. 否(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 놓은 대부분의 것들이 무너진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삶에서 우러나온 경험 법칙이다.

이 삶의 경험 법칙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삶에 적용되는 법칙이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우리는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돈을 아는 사람만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 있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한다. 돈은 지엄한 것이다. 생의 외경! 이 외경은 밥벌이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 사내는 자연에서 직접 밥을 마련하였으나 우리 시대는 돈을 경유하여야 밥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노동은 소외다. 단순히 말하면 밥은 쌀을 삶은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유물론, 유심론보다 심오하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그 촉감! 그것이 곧 삶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모든 밥 속에는 낚시 바늘이 있다. 우리가 밥을 먹는 순간에 우리는 낚시 바늘도 함께 물게 된다. 낚시 바늘을 발려내고 밥만 먹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세상은 결코 어수룩하지 않다. 낚시 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정이 꿰어져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하여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사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고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김훈,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생각의 나무, 218-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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