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예수님 像과 부처님 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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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362.예수님 像과 부처님 像
지금 목사님네 교회에 불교 작가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조각하고 그려낸 예수님 초상화나 조각상을 교회에 모실 수 있습니까?
지금 스님네 절에 기독교 작가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조각하고 그려낸 부처님 초상화나 조각상을 절에 모실 수 있습니까?
이런 물음을 던진다면 대번에 "아니, 우리 기독교에 예술가가 없어서 불교 작가가 만든 예수님 상을 모신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 "아니, 우리 불교에 예술가가 없어서 기독교 작가가 만든 부처님 상을 모신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놋쇠 재떨이 내려치는 쟁쟁한 호통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버나드 쇼는 "뉴스란 무엇인가? 개가 사람을 물었다, 그것은 뉴스가 아니다. 사람이 개를 물었다, 그것이 뉴스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그 뉴스입니다.
몇 년 전, 서울 명동성당의 예수상을 조각한 카톨릭 신자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통적인 불교 관음상의 圖像(도상)에 충실하면서도 모더니티까지 갖추어 국내 불교 미술사를 통틀어서도 단연 탁월한 관음보살 상 한 점을 조각하였습니다.
최 교수는 "카토릭 신자가 만든 관음상을 받아 줄 절이 어디 있을까? 없을 꺼야, 암, 없지 말구!"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기 속내를 사진 작가 강운구에게 말했습니다. 강운구는 동화 작가 정채봉에게 말했습니다. 정채봉은 샘터 출판사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법정 스님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길상사 주지로 있던 법정 스님은 그 소리를 듣고 서울 연남동 최 교수의 작업장을 찾아가 그 관음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 4월 쾌히 그 관음상을 길상사 관음상으로 봉안하였습니다.
이만해도 흐뭇한 장면인데, 후일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최교수는 봉안 직후 高手답게 한 마디 하였습니다. "불교의 견성이나 기독교의 거듭남이나 다 같은 얘기다. 또 솔직히 고백하지만 내 신앙은 카톨릭이지만, 내 예술의 원천은 불교에 가깝다". 길상사 관음상 안치의 名演出(명연출)은 상호 이 정도의 內功(내공)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입니다.
<참고: 조우석이 본 책과 세상, 조선일보, 2001. 6.23. 39면>
지금 목사님네 교회에 불교 작가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조각하고 그려낸 예수님 초상화나 조각상을 교회에 모실 수 있습니까?
지금 스님네 절에 기독교 작가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게 조각하고 그려낸 부처님 초상화나 조각상을 절에 모실 수 있습니까?
이런 물음을 던진다면 대번에 "아니, 우리 기독교에 예술가가 없어서 불교 작가가 만든 예수님 상을 모신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 "아니, 우리 불교에 예술가가 없어서 기독교 작가가 만든 부처님 상을 모신단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놋쇠 재떨이 내려치는 쟁쟁한 호통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버나드 쇼는 "뉴스란 무엇인가? 개가 사람을 물었다, 그것은 뉴스가 아니다. 사람이 개를 물었다, 그것이 뉴스다!" 라고 하였습니다. 다음은 그 뉴스입니다.
몇 년 전, 서울 명동성당의 예수상을 조각한 카톨릭 신자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통적인 불교 관음상의 圖像(도상)에 충실하면서도 모더니티까지 갖추어 국내 불교 미술사를 통틀어서도 단연 탁월한 관음보살 상 한 점을 조각하였습니다.
최 교수는 "카토릭 신자가 만든 관음상을 받아 줄 절이 어디 있을까? 없을 꺼야, 암, 없지 말구!" 하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기 속내를 사진 작가 강운구에게 말했습니다. 강운구는 동화 작가 정채봉에게 말했습니다. 정채봉은 샘터 출판사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법정 스님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당시 길상사 주지로 있던 법정 스님은 그 소리를 듣고 서울 연남동 최 교수의 작업장을 찾아가 그 관음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2000년 4월 쾌히 그 관음상을 길상사 관음상으로 봉안하였습니다.
이만해도 흐뭇한 장면인데, 후일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최교수는 봉안 직후 高手답게 한 마디 하였습니다. "불교의 견성이나 기독교의 거듭남이나 다 같은 얘기다. 또 솔직히 고백하지만 내 신앙은 카톨릭이지만, 내 예술의 원천은 불교에 가깝다". 길상사 관음상 안치의 名演出(명연출)은 상호 이 정도의 內功(내공) 속에서 비로소 가능했던 것입니다.
<참고: 조우석이 본 책과 세상, 조선일보, 2001. 6.23.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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