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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쌀 반 말 메고 온 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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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예화 367.쌀 반 말 메고 온 순이

초등학교 때 내 뒤에 앉은 아이는 순이였습니다. 척 보기에도 순이는 지저분했고 가난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뒤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던 어느 날 집에 돌아가는 길인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릅니다. 돌아보니 순이였습니다. 같이 가자는 겁니다. 싫었지만 그냥 같이 가기로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순이는 참 착하고 좋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순이의 친구가 되어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며칠 후 순이 집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순이 아버지는 막노동꾼에 술주정뱅이였고 순이 엄마는 어디론가 도망갔고 순이가 어린 두 동생을 돌 볼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요즈음 말로 소녀 가장이었습니다. 불쌍했지만 어린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루는 선생님이 종례 시간에 내일 준비물은 모두 <사랑의 쌀 반 봉지 씩>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쌀 반 봉지 씩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은 쌀을 한 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순이가 학교에 안 나왔습니다. 나는 속으로 순이가 쌀이 없어 못 가져오는 것이 창피해서 안나오는가 보다 생각하고 속으로 참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1 교시가 끝나고 2교시가 막 시작하려는데 순이가 등에 무거워 보이는 자루를 메고 땀을 빨빨 흘리며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순이야 왜 늦었니? 순이는 준비물 가져오느라 늦었어요 합니다. 그런데 네가 메고 온 그 게 뭐니? 순이는 쌀이요 합니다. 순이는 준비물 쌀 반말을 마련 해 오느라고 늦었다고 하였습니다. 순이는 <쌀 반 봉지>라는 선생님 말씀을 <쌀 반 말>로 잘못들은 것입니다.

(새벽에 일 나가는 아버지, 도망 간 엄마, 어른이 없는 순이네 집에서는 쌀을 반말이나 가져오라는 선생님이 어디 있니? 네가 뭔가 잘못 들은 게지? 하고 일러 줄 어른이 없었던 겁니다.)

순이 대답을 듣자마자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손바닥을 치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선생님은 갑자기 순이를 와락 껴안고 우셨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펑펑 우셨습니다. 우리는 그 때 선생님이 순이를 붙들고 왜 그렇게 섧게 펑펑 우셨는지 영문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날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사랑의 쌀 반 봉지 씩>  가져오라고 한 것은 바로 순이네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순이는 우리 반 아이들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사랑의 쌀을 메고 온 것입니다. 사랑의 쌀 반 가마를 준비하느라 그 어린 순이가 얼마나 안타까워하였을 것인가?
<이용범,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초당,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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