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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믿음의 이중 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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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학교에 다닐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얼마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공급하셨는가에 대해 간증하는 일이 흔했다. 어느 학생이 전기요금을 내기 위해 139달러 12센트가 필요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데 그가 요금을 내야 할 시간에 꼭 맞는 액수의 돈이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경제적인 상황에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척추를 곧게 하실 수 있다거나 누군가의 몸을 화학적으로 조절하셔서 그들의 당뇨병을 떠나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당신의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굽은 척추를 펴는 것이 하나님께 더 어려운 일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종종 믿음에 따라 우리의 경제적 필요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우리는 신체적인 필요에 대해서는 믿음에 따라 기도하지 않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신약 시대에 믿음에 따라 치유를 행하셨다면, 왜 오늘날에는 믿음에 따라 치료하시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날 치유의 역사가 부족한 곳의 문제는 하나님의 능력이나 기꺼워하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치유하심에 대한 교회의 믿음에 있다고 믿는다.

- 「놀라운 성령의 능력」/ 잭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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