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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봄에 눈이 와도 땅속의 새순은 솟아나고야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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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은 반항아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어릴 때 공부에서 흥미를 찾지 못했고 어떤 종류의 필기 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났으며, 세 번의 시도 끝에 가까스로 샌드 허스트에 있는 왕립군사학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보어 전쟁에서 보어인들의 포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경에서 약 48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적의 영토에서 대탈출을 감행하였고 전쟁 영웅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언어능력을 개발하여 폭넓은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전쟁 경험으로 소설을 써 부와 명성을 얻었고, 대중 강연을 통해 국내외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그림 그리기를 통해 공무의 중압감을 덜어내었다고 합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1899년 군대에서 퇴역했을 때도 포기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정치에 도전하여 보수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60여년 동안 공직에 몸담으면서 내무, 재무, 통상, 국방 장관 등 국가의 중요한 장관직을 수행하였습니다.
세계대전 초창기에 해군장관이었던 그는 갈리폴리 작전의 실패로 실각해 20년 간 공직을 떠났으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저술과 강연을
시작하면서 다시 문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는 미국 주식시장에 많은 돈을 투자했으나, 1929년 대공황으로 모든 것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연설의 달인이 되는 것은 내 평생의 야망이었다."고 말하며 연설에 매달려 1940년 5월, 새로 선출된 수상으로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방울"이라는 명 연설로 하원과 낙심한 국민들을 각성시켰습니다.
그의 그림은 왕립미술아카데미에 인수되어 그가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특별 대우를 받을 정도로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41세에 동생의 아내가 수채화를 그리는 것을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마음에서 지친 부위는 다른 부위들을 이용해 회복될 수 있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는 것은 짧은 인생 외에는 제약 조건이 없다."고 말하며 평생 뇌졸중, 고혈압, 폐렴, 그리고 다른 만성적 질병들과 싸우며 살았습니다.

역사가 아서 마더는 "그의 정력과 지구력은 경이적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90세까지 멈추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에게는 강인한 용기,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희망이 있다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열린편지/김필곤 목사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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