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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잘못된 선택은 자유의 사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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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통일되기 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한번은 동독의 개 한 마리가 사선을 넘어서 서독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정말 용감한 개지요.
그래서 서독의 개가 동독에서 넘어온 개를 만나서 물었답니다.
"너 무엇 때문에 동독에서 이곳까지 그처럼 생명을 걸고 내려 왔니? 동독에는 먹을 것이 없니?"
"아니"
"그러면 무엇 때문에 왔니? 동독에는 집이 없니?"
"아니"
고개를 저었답니다.
궁금해진 서독의 개는 계속 물었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궁금하구나. 그러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사선을 넘어 서독에 까지 왔니?"
이때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온 개가 하는 말이 "동독에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 집이 없어서가 아니야" 더욱 궁금해진 서독의 개가 계속 물었답니다. "이상하다. 아니, 우리야 먹을 것 있고 잘 집이 있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 바랄게 뭐 있니?" "아니, 그게 아니야, 동독에선 그런 것은 걱정 없는데 마음대로 짖을 수가 있어야지. 짖고 싶을 때 짖지 못하니까 답답해 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여기까지 생명을 걸고 넘어왔어."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이 자유롭게 산다는 것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유롭게 이사를 가고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자유롭게 결혼을 하고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하고 자유롭게 노래를 하고 산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헨리는 "내게 자유를 주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주시오!"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살펴 볼 때 이 자유를 위한 인간의 몸부림은 참 자유보다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동물로 돌아가는 경향을 띠고 있기도 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고 니체는 주먹의 철학으로 참 자유를 누리려고 했고, 마르크스주의는 밥통의 철학으로, 프로이드는 성기의 심리학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분으로 생각하였고 기독교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속박의 종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동성애도 자유라고 생각하고 간음도 자유라고 생각하고 생명의 선택도 자유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은 결국 자유를 제한하게 됩니다. 죄의 늪에 갇히면 결코 인간은 참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성적 자유를 누린다고 15세 소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인생의 풍요로운 자유는 결국 제한되고 말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 안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진리 안에 누리는 자유는 죄도 죽음도 올무가 될 수 없습니다. 기차가 레일을 떠나고 배가 바다를 떠난다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열린편지/열린교회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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