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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생각해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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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한국인 2세가 명문 컬럼비아대 의과대학에 지원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SAT 시험에 만점을 받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부유해서 무난히 합격되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불합격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귀하의 성적은 아주 우수합니다. 가정형편이나 여러 조건들도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귀하의 서류 어디를 보아도 헌혈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 헌혈한 경험도 없는 귀하가 어떻게 환자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
귀하는 의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요즘은 능력위주의 시대이다. 그래서 대학이든 기업이든 우수한 인재만을 뽑는다. 거기다가 재정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우선 선발한다. 심지어는 기여입학제라는 것을 시행하려고도 한다.
실력이 참작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실력은 좀 모자라더라도 경제력으로 대학을 들어가는 일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인재 선발원리를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와 견주어 본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주님이 만일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사도들을 선발하셨다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12제자의 수에 포함될수 있었을까?
학력이 우수한 사람은 나다나엘 한 사람뿐이었을 것이다.
주님이 사람을 선택하시는 원리는 지식정도가 아니라 영성의 수준이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할수 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었지 공부를 많이 했느냐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그러고도 주님은 그들을 인류최대의 실력자로 길러 내셨다.
주님은 세상의 천한 자들도 능력있는 자로 길러내실수 있었기에 약한 자들을 부르셨다. 그러나 세상은 능력있는 사람으로 길러낼수 없기에 실력있는 사람만을 골르는 것이 아닐까?
진짜 실력이란 아주 못한 사람을 택해서 조금 나은 사람으로 키우고 조금 나은 사람을 선발해서 더 나은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는 말은 영성의 깊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대학이나 기업이나 오늘날은 영성의 깊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위 유명한 간판을 본다. 간판으로서 간판을 따는 것을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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