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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청색 머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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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때, 곧 있을 운동회에서 릴레이 선수로 뽑힌 나는 있는 힘껏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누워 계시는 엄마의 앙상한 팔을 베고 나란히 누웠다. 어린 나는 마냥 신나 있었다. “엄마, 나 릴레이 선수로 뽑혔어요. 엄마 내일모레 꼭 와서 응원해줘야 돼?” “그래….” 위암수술을 받고 배가 부풀어 있던 엄마는 대답조차 힘겨웠지만 무척 흐뭇해하셨다. 그대로 잠이 들어 얼마를 잤을까?
동네 어른들이 웅성대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안은 채 오랫동안 준비해온 길로 떠나신 것이다. 장례식은 정신이 없었지만 어린 나는 운동회에 못 가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난 상주 망건 대신 청군 머리띠를 동여매고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부르시고는 그렇게 운동회에 가고 싶냐고 물으셨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러면 학교에 가거라. 대신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 하시며 머리를 쓸어주셨다.
난 고개를 숙인 채 끄덕거렸지만 집 밖에 나와선 함성을 지르며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결국 릴레이에서 이겨 상을 탔다. 그런데 모든 게 끝나고 해가 질 무렵,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진 나는 한구석에서 눈물을 팔뚝으로 훔치며 꺼이꺼이 울었다. 아무도 등나무 아래서 우는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윤옥아 ….” 아버지였다. 엄마를 묻고 아들을 찾으러 오신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난 여전히 울면서 상으로 탄 학용품을 아버지께 내밀었고, 아버지는 그저 꼭 껴안아주셨다. 집으로 오는 길, 아버지가 꼭 붙든 손이 무척 아팠다. 하지만 아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쩐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최윤옥, 월간 <낮은 울타리> 2001년 9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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