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어머니의 약속

첨부 1


“백 일만 자면 돼.” 엄마는 늘 이런 식이었다.
지하에 사는 것이 싫었던 난 어서 이사가자고 조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여기 사는 거 애들이 알고 놀린단 말야!” 엄마는 꿈적도 않으신다.
“민석이네처럼 아파트에 살면 좋잖아. 거긴 놀이터도 얼마나….” 이쯤 되면 어린 마음에 속이 상해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한마디 하시는 것이 녹음기를 튼 것마냥 똑같다.
“백 일만 자면 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 집은 지하를 겨우 면하고 열 평 정도의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비좁고 오래되긴 했지만 지하가 아닌 3층에 있어 빛이 들어왔으며 운동장만큼 넓은 놀이터도 있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고 엄마는 날 불러앉히곤 엉엉 우셨다.
이제껏 눈물 한 번 보인 적이 없었던 엄마가 날 붙잡고 우는 것이었다.
엄마의 눈물이 나의 손등 위로 쏟아졌다.
“미안하다, 인호야. 내가 미안해. 컴컴한 지하 셋방에서 나오기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엄마는 짐꾸러미 하나를 불쑥 내미셨다. 풀어보니 달력이었다.
엄마가 백 일 뒤 이사간다고 표시를 해가며 날짜를 지워갔던 그 달력들이었다.
백 일이 지워질 때쯤이면 나 모르게 새 달력으로 바꿔놓으셨다고 한다. 세상 사는 것이 느슨해지고 나태해질 때면 가끔씩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때의 어머니의 심정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달력에 ‘100’자를 써놓는다.
그것을 볼 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 배인호, 제일제당 사보 <생활 속의 이야기> 2001년 5월호에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