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땀 흘린 만큼

첨부 1


제때 인사 나누지 못한 얼굴들을 만나러 왕창 휴가를 내서 배낭을 매고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가면 마음 독하게 먹고 화학비료, 제초제 안 치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여럿 살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몇 가구가 생산자 공동체를 이루어 ‘한살림’에 농산물을 대기로 했나봅니다.
제가 머물던 날 저녁에 마침 생산자 모임이 있다길래 저도 끼어 앉았습니다.
자잘한 일상과 고민거리를 한 사람, 한 사람이 풀어놓고서 회의를 했는데, 올해 고추값은 얼마로 했으면 좋겠느냐가 문제였지요.
생산자 모임과 소비자 모임이 의논해 값을 정한다고 했습니다.
수요공급의 법칙으로 값을 정하는 자본주의 시장논리를 넘어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그렇게 비가 내려댔으니 고추 작황이 좋을 리 없습니다.
탄저병으로 썩어들어간 고추를 보기가 민망했습니다.
이렇게 수확량이 적으니까 작년보다 값을 올려 받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의견에 힘이 실리는가 싶더니, 우리 사정에 따라 값을 정하지 말고 우리는 늘 받던 대로만 받자는 정 집사님의 말에 모두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올해는 손해를 보더라도 수확량이 많을 때 그만큼 이익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러면 흉작일 때는 유기농 고추가 오히려 싸고 풍년일 때는 유기농 고추가 많이 비싸보이겠지요.
그렇게 거꾸로 매겨진 값을 이해하고 사먹어 줄 사람이 그닥 많지는 않을 겁니다.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하고 결정은 다음으로 미루어졌습니다.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땀흘려 정직하게 지은 자식 같은 농산물에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매기고 싶은 마음이 아름답고도 안쓰러웠습니다.
- 이혜영, 월간 <작은 것이 아름답다> 편집장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