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마음을] 비밀약속

첨부 1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비밀약속

  그날 나는 중요한 볼 일이 있어서 차를 몰을 급히 어디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늦은 데다가 도중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되도록이면 주유소가 눈에 띄길 바랬다. 방향 감각을
잃고 낯선 도시를 헤매다 보니 어느새 기름이 바닥나 있었다.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때마침 나는 저만치 앞에서 노란색으로 회전하고 있는 소방서 건물의 형광등 불빛을
발견했다. 다행이었다. 길을 묻기에 소방서만큼 좋은 곳이 또 있겠는가?
  나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길 건너편의 소방서로 갔다. 세개의 문이 위로 활짝
젖혀져 있고 그안에 주차해 있는 빨간색 소방차 여러 대가 보였다. 크롬으로 도금된
잘 닦인 소방차들은 차체를 반짝이며 문이 약간씩 열린 채로 비상벨이 울릴 경우에
대비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소방서 특유의 냄새가 났다. 선반에서 물기를 말리고 있는 긴 소방
호스와 커다란 크기의 고무 장화,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입는 재킷과 헬멧 등에서 나는
냄새였다. 거기에 깨끗이 물청소된 바닥과 광택 처리된 소방차들에서 나는 냄새까지
합쳐져 소방서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걸음을 멈추고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나의 아버지는 소방서에서 화재
진압 반장으로 35년 동안을 일하셨다.
  나는 소방서 내부를 들여다 보았다. 안쪽에는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높다른 화재
진압봉이 세워져 있었다. 하루는 내가 제이 형과 함께 소방서에 놀러갔을 때 아버지는
나와 형에게 두 차례나 그 장대를 타고 내려오게 하셨다. 소방서 구석에는 소방차를
수리할 때 차 밑바닥에 눕기 위해 사용하는 도르레 달린 깔판이 있었다. 아빠는 그
깔판 위에 나를 올려 놓고선 소리치셨다.
  "꽉 잡아야 한다!"
  그리고는 내가 술 취한 선원처럼 비틀거릴 때까지 깔판을 빙빙 돌리셨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타 본 어떤 놀이기구보다 더 스릴 넘치는 일이었다.
  깔판 옆에는 고전적인 코카콜라 상표가 부착된 오래된 음료수 자판기가 한 대
있었다. 그 자판기는 아직도 코카콜라 초기 제품인 280cc 초록색 병에 든 코카콜라를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것이 35센트이지만 내가 어렸을 당시는 10센트였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척 했지만 사실은 그 자판기에서 콜카콜라 한 병을 뽑아 먹는
것이 나로서는 소방서에 놀러가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중요한 이유였다.
  내가 열살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친구 두 명을 데리고 소방서로 갔다. 소방서도 구경시켜 줄 겸, 또 아버지에게 콜라를
사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에게 소방서 내부를 구경시켜 준 뒤 나는 기회를
엿보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기 전에 친구들과 함께 콜라를 한 병씩 사 마시면 안
될까요?"
  그날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서 약간 주저하는 내색을 느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곧
승낙을 하셨다.
  "그렇게 하렴."
  아버지는 우리들 각자에게 10센트씩을 나눠 주셨다. 우리는 자판기로 달려가 콜라를
한 병씩 꺼냈다. 그리고는 재빨리 뚜껑을 열고 뚜껑 안쪽에 영화배우 사진이 들어
있는지 확인했다.
  얼마나 행운이 겹치는 날이었던가! 운 좋게도 내 뚜껑에 영화배우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제 두 개만 더 모으면 야구모자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는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여름 오후의 수영을 즐기러 갔다.
  그날 나는 호수에서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돌아왔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우연히 부모님께서 대화를 나누시는 걸 엿듣게 되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약간 화가
나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콜라 사 줄 돈이 없다고 말씀을 하셨어야죠. 브라이언도 알아 들을 나이가 됐어요.
그 돈은 당신이 점심 사드실 돈이었잖아요. 우리가 돈이 여유가 없다는 걸
아이들에게도 일깨워 줘야 해요. 그리고 당신이 자꾸만 점심을 굶으면 어떻게 해요."
  아버지는 늘 하시던대로 그냥 어깨만 으쓱해 보이실 뿐이었다.
  내가 엿듣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아채시기 전에 나는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 내
방으로 갔다. 그 방은 우리 네명의 형제들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호주머니를 비우자 많은 문제를 일으킨 콜라병 뚜껑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그때까지 모은 여섯 개의 병뚜껑들이 있는 곳에다 놓았다. 그제서야 나는 그
병뚜껑들을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큰 희생을 해오셨는지 깨달았다.
  그날 밤 나는 그 희생에 보답하기로 혼자서 약속했다. 아버지가 그날뿐 아니라
전에도 수없이 나를 위해 희생하셨음을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아버지
에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신 일들을 나는 결코 잊지 않으리라.
  아버지는 아직 젊으셨던 47세에 첫 번째 심장마비를 일으키셨다. 우리들 아홉
식구를 먹여 살리느라고 밤낮으로 직장을 세 군데나 다니면서 힘들게 일하신 것이
끝내 아버지를 망가뜨렸던 것이다. 부모님의 결혼 25주년 기념일 저녁에 우리들 중
가장 체구가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목소리 굵던 아버지는 식구들에 둘러싸인 채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셨다. 어린 우리들이 절대로 뚫을 수 없다고 여겼던 그 단단한
갑옷이 처음으로 뻐걱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8년에 걸쳐 아버지는 세 차례나 더 심장마비의 고통을 겪으시면서 힘겹게
생활고와 싸우셨다. 그러다가 마침내 가슴에 심장 박동 조절장치를 매단 사람이
되시고 말았다.
  어느날 오후 아버지의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 4륜 구동의 파란색 차였는데 너무
낡아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버지는 병원에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나더러
태워다 달라고 전화를 거셨다. 한 시간 뒤 나는 차를 몰고 소방서로 갔다. 아버지가
다른 소방대원들과 함께 소방서 앞에 나와서 누군가 새로 산 픽업 트럭을 구경하고
계셨다. 짙은 바다색의 포드 회사 제품이었다. 얼른 보기에도 아주 잘 뽑아져 나온
차였다. 내가 아주 멋진 차라고 말하자 아버지는 당신도 언젠가 그런 트럭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둘 다 웃었다. 그것이 항상 아버지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항상 이루기
힘든 꿈처럼 보였다.
  이 무렵 나는 개인적으로 사업이 잘 되어 나가고 있었고,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트럭을 한 대 사드리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돈으로 그걸 사지 않으면 도무지 내 차라는 기분이 들지 않거든."
  병원 진료실에서 걸어 나오는 아버지를 보니 얼굴이 창백하셨다. 주사 바늘로
수없이 찔리고 검사받고 진찰하느라 몹시 지치신 것이다.
  "그만 가자"
  그것이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전부였다.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가면서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우리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버지가
어떤식으로든 내게 말씀하시겠지 하고 나는 기다렸다.
  나는 소방서까지 먼 길을 차를 몰았다. 우리가 옛날에 살던 집, 운동장, 호수
모퉁이의 구멍가게를 지나가는 동안 아버지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과 그 각각의
장소들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음을 나는 이때 알았다.
  내가 아버지를 바라보았더니,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난 이해했다.
  우리는 도중의 아이스크림 가게에 내려 15년만에 처음으로 단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랜만에 우리가 나눈 진정한 대화였다.
아버지는 우리 자식들이 무척 자랑스러우며,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가 두려워하는 것은 평생을 함께 살아온 어머니와 결별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버지처럼 한 여자와 그토록 깊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자신에게 임박한 죽음에 대해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을 나에게
부탁하셨다. 아버지의 소원대로 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나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지키기 힘든 비밀임을 알았다.
  이 무렵 아내와 나는 승용차든 소형 트럭이든 새 차를 한 대 구입할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마침 근처에 있는 자동차 대리점의 판매사원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차가 좋을지 함께 보러 가자고 부탁했다.
  자동차 전시장으로 가서 판매사원과 얘길 나누는 동안 나는 아버지가 초콜릿 빛깔의
갈색 픽업 트럭을 유심히 바라보고 계신 걸 눈치챘다. 모든 선택 사양이 완전히
장착된 대단히 멋진 차였다. 아버지는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작품을 점검하듯이
손으로 트럭을 쓰다듬으셨다.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제 생각엔 아무래도 승용차보다는 트럭을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름
소모가 적은 소형 트럭을 사야겠어요."
  판매사원이 제품설명서를 가지러 사무실로 들어간 사이에 나는 아버지에게 그 갈색
트럭을 한 번 시운전해 보자고 제안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흔드셨다.
  "이 차는 너무 비싸서 네 형편으론 살 수 없다."
  내가 말했다.
  "저도 그건 알아요. 아버지도 아시구요. 하지만 판매사원은 제 형편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으셨다. 우리는 곧장 27번 도로로 달려 나갔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우리는 신이 났다. 10분 정도 운전을 하면서 아버지는 정말 승차감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옆에 앉아서 모든 버튼과 경음기를 눌러대며 장난을 쳤다.
  전시장으로 돌아온 우리는 다시 파란색의 소형 선다우너 트럭을 골라 시운전을
했다. 아버지는 이 트럭이 내가 운전하게 될 거리로 보나 기름 소모로 보나 가장
적합하다고 조언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하고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판매사원과 거래를 끝냈다.
  며칠 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산 트럭을 가지러 가자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얼른 동의하셨다. 아버지가 그렇게 얼른 동의하신 것은 지난 번의 그
갈색트럭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시기 위한 것임을 난 알았다. 아버지는 그 트럭을
'나의 갈색 트럭'이라고까지 하셨다.
  우리가 전시장 마당으로 갔을 때 내가 산 파란색 소형 선다우너 트럭이 판매 딱지를
붙이고 그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광택이 나도록 잘 닦인 그 갈색 픽업
트럭이 역시 유리창에 커다랗게 <팔렸음>이란 딱지를 붙인 채 서 있었다.
  나는 슬쩍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누군가 멋진 트럭을 샀구나"
  난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지,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제가 왔다고 말씀해 주시겠어요? 차를
주차하는 대로 곧 뒤따라 갈게요."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그 갈색트럭 앞을 지나가셨다. 그러면서 손으로 그 차를
쓰다듬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 다시금 실망감이 스치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건물 안쪽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바깥에 선 채로 유리창을 통해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 자신의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판매사원은 의자를 권한 뒤 트럭 열쇠 하나를 아버지에게 건넸다. 바로 그
갈색 트럭의 열쇠였다. 판매사원은 이어서 아버지에게 그것이 내가 아버지를 위해
드리는 선물이며 이것은 둘만의 비밀이라는 걸 설명했다.
  아버지가 유리창 밖을 쳐다보셨다.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날 밤 아버지가 차를 몰고 오셨을 때 난 집 밖에서 기다렸다. 아버지가 트럭에서
내리자 난 아버지를 힘껏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드렸다. 또 나는 이것이 우리 두 사람의 비밀임을 아버지 께
상기시켰다.
  그날 저녁 우리는 드라이브를 나섰다. 아버지는 그 트럭의 다른 것들은 다 이해가
가는데, 핸들 중앙에 코카콜라 병뚜껑이 박혀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브라이언 키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