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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마음을] 호라이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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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호라이 상자

  나는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다. 나는 모든 걸 다 할순
없지만 그래도 어떤 걸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모든 걸 할 수 없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어떤 것까지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 E. 해일>

  "내가 가기 싫다는데 뭐가 이해가 안 간다는 거예요?"
  나는 남편 래리에게 투덜거렸다. 래리는 의사였다. 그는 나더러 캘리포니아 북부의
타호 호수 근처에서 열리는 의학 세미나에 함께 가자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때는
한 겨울인 12월 중순이었다.
  남편은 숫제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나 혼자 장거리를 운전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리고 내 계획을 좀 들어봐. 승용차
대신 제우스를 몰고 가는 거야."
  제우스는 우리의 홈카(주방시설과 침실이 갖추어진 차. 미국에선 여행시에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음)에 붙여진 이름이다. 남편이 계속 말했다.
  "그럼 당신도 따뜻하고 안란한 여행을 할 수 있을 테고 말야. 내가 모임에 참가하는
동안 당신은 차 안에서 곰인형이나 뜨게질하면서 쉬면 돼. 식사는 사먹으면 되구. 절대
차 안에서 요리를 만들게 하거나 설겆이를 시킨진 않을 게."
  하긴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였다. 북적대는 휴가 기간을 고산지방의 고요함으로
대신한다는 계획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 결과 이튿날 아침 나는 어느새 남편
곁에 앉아 제우스를 타고 타호 호수를 향해 떠나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새크라멘토 계곡의 서리들을 모두 날려 보내 주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있던 날씨에
대한 불안까지도 흩어 버렸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도로가 시에라 산맥의 구릉지대들을 꾸불거리며 올라가는 동안
낮게 드리워진 회색 구름떼가 해를 가리며 위협적으로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햇살이
화창했던 아침은 순식간에 황량하고 스산한 오후로 바뀌었다. 남편이 라디오를 켜자
음악이 흘러 나오는 대신 날씨 속보가 우리를 맞이했다.
  "중앙 기상대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거센 폭풍이 지금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향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시는 분들은 스노우 체인을 준비해 눈길에
대비하셔야 합니다. 때로는 폭설을 동반할 수도 있습니다."
  도너 서밋(시에라 산맥의 한 봉우리)에 이르렀을 때는 눈이 담요처럼 도로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차의 헤드라이트는 하얗게 소용돌이치는 눈발 속을 거의 뚫지 못했다.
  나는 옆에 앉아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집에 남아 있고 따라오지 말았어야 하는건대."
  남편은 날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타호 호수로 가는 대신에 레노(미국 네바다 주 서부의 도시)로
가자구. 그곳에 홈카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공원이 있거든. 근처에는 카지노와
식당들도 많이 있구 말야. 우리 그곳에 가서 쇼도 구경하면서 한번 호화스럽게 지내
보자구. 한 시간이면 그곳까지 충분히 갈 수 있어."
  그렇게 해서 우리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레노 시의 공원에 우리의 제우스를
주차시키게 되었다. 안전하고 꽤 괜찮은 공원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있는 곳과
우리집 사이에는 거대한 산맥 하나와 눈보라 치는 폭풍설이 가로놓여 있었다.
다음날도 눈이 내렸고, 그 다음날도 눈이 내렸다. 또 그 다음날도. 우리는 카지노는
둘째치고 차 밖으로 백미터도 외출할 수 없었다. 제우스 안에 앉아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읽을 거리들을 낱낱이 다 읽었다. 그래도 시간은 마냥 느릿느릿 지나갔다.
  그때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구. 바로 여기서 말야! 홈카를 몰고 이 공원에 와 있는
모든 여행자들을 초대하는 거야. 지금쯤 다른 사람들도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을 거야."
  나는 얼굴을 빛내며 그 제안에 동의했다.
  "멋진 생각이에요! 내 필기함 어딨죠? 초대장을 만들어야겠어요."
  내가 갖고 다니는 필기함은 평범한 연필상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길이가 30센티,
높이가 20센티, 폭이 15센티에 달하는 일본식 소형 서랍장이었다. 각각의 모서리는
직각으로 검은색의 얇은 쇠가 덧대어져 있고, 맨 위칸은 경첩이 달려 있어서 위로
여닫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곳은 붓과 먹을 넣는 칸이었다. 그리고 전면에는
크기가 다른 일곱 개의 작은 서랍이 있었다.
  서랍들마다엔 작은 자물쇠가 달려 있어서 운치를 더해 주었다. 또한 쇠못을
사용하는 대신에 대나무 못을 사용해, 깎지를 끼듯이 공들요 짜맞춘 것이었다. 나무
재질은 골동품만이 갖는 적갈색의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2백 년 동안 밀랍으로 정성들여 닦고 썩지 않도록 잘 보존한 결과였다. 우리가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남편이 그 필기 상자를 나에게 선물했다.
  나는 잉크와 펜이 담긴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펜촉이 넓은 펜을 골라 큼지막한
필체로 여섯 장의 초대장을 만들었다.
  <오늘 저녁 여덟시에 23구획에 주차해 있는 홈카 제우스에서 포트럭 파티(각자가
음식을 갖고 와서 하는 저녁 파티)를 엽니다. 당신과 당신의 이웃분들을 초대합니다.>
  우리는 초대장을 들고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가서 흰 이불 위에 양귀비
씨앗처럼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홈카들의 문 손잡이에 단단히 붙여 놓았다.
  시간이 되자 처음 보는 이방인들이 군침이 도는 음식과 술을 들고 자기 소개를 하며
문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서로가 한 모험들을 주고 받고,
농담을 하고, 흘러간 노래들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두 시간 뒤 손님들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하나 둘 떠났다.
  사람들을 모두 보내고 내가 막 신발을 벗으려는 찰나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둠 속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희는 밀러 부부입니다. 요 옆의 트레일러 하우스에 머물고 있죠."
  나는 서둘러 말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어서요. 즐거운 파티에 좀 늦은 게 무슨 상관인가요."
  코와 뺨이 빨갛게 얼은 젊은 남자가 자기 소개를 했다.
  "전 알버트 밀러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 샐리이구요."
  샐리는 주저하듯 손을 내밀어 우리와 악수를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없이 팔걸이 의자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알버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자신의 직업과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있는 자신의 집,
그리고 트레일러 하우스를 몰고 지난 두달 동안 미국 서부를 여행한 일들에 대해
말했다. 샐리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향이 좋은 차를 대접했다. 그녀는 마지 못해 한 모금 홀짝거리고는
찻잔을 한쪽으로 치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그녀는 우선 내가 별 생각없이
테이블 옆에 놓아 둔 그 필기함을 치워야만 했다.
  그녀는 밤색 머리칼을 위로 쓸어올리고는 파란색이 감도는 초록색 눈으로 유심히 그
흥미있는 상자를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어두웠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눈치챘다. 그녀는 내가 애초에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아직 서른 살도 안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표정의 변화가 정말인지 아니면 내 착각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무뚝뚝하고 냉담한 표정이 다시금 그녀의 얼굴을 사로 잡았으며, 그녀는 다시금
그녀 자신만의 세계로 뒷걸음질쳐 들어갔다.
  내 남편도 나처럼 샐리의 그런 변화를 목격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긴장을
풀기 위해 그 상자에 대해 설명했다.
  "1800년대에는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문맹이었어요. 이 상자들은 장거리 여행을 하는
선비들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갈 때마다 필기도구를 챙겨갖고 다니던 상자였지요."
  대화를 나눠 보려던 시도는 곧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샐리는 마음이 딴 데로 가
있었다. 알버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플러를 집어들었다. 가야할 시간이라는
암시였다.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눈 뒤 알버트가 말했다.
  "댁이 보내신 초대장에는 '각자 음식을 가져오라'고 적혀 있었지만 샐리는 요리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대신에 샐리가 쓴 책을 한 권 가져왔습니다. 샐리는 전에는
글을 썼거든요. 글을 아주 잘 썼지요."
  곧이어 그 부부는 밤의 어둠 속으로 떠나갔다. 우리의 방문객들이 떠나자마자
래리가 말했다.
  "전에 분명히 저 얼굴을 본 것 같아. 샐리 밀러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의 표정과
아주 비슷한 얼굴 말야. 틀림없이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군."
  다음날 아침은 햇빛이 화창하고 따뜻했다. 며칠 동안의 춥고 음산한 날씨에 대한
보상인 셈이었다. 마치 자연이 자신의 변덕스런 마음에 대해 사죄라도 하는 듯했다.
남편과 내가 홈카 지붕에 쌓인 눈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알버트 밀러가 다가와 인사를
했다.
  "떠날 준비가 다 되셨나요?"
  남편이 대답했다.
  "옙. 쫓기는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가야죠."
  알버트는 장화에 묻은 눈을 털려는 듯 발을 탁탁 굴렀다. 추운 걸까? 아니었다. 나는
그가 뭔가 말을 하기 위해 애써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얘기를 꺼낼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떠나시기 전에 지난 밤 일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제 아내 샐리는
지금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초대장을 받고 나서 샐리를 트레일러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많은 설득을 했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파티에 참석하면
그녀의 기분이 나아질까 해서였죠.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버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머플러를 만지작거리더니 얘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석달 전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를 처음 가진 부모들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도 걱정을 했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었지요.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고
튼튼했으니까요.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나흘 뒤에 아기는
요람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그것이 SIDS라고 하더군요. 그것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유아 돌연사 증후군이라는 겁니다. 아무 조짐도 없고, 아무 원인도
없으며, 아무런 치료법도 없다는 거죠."
  아, 그랬었군, 하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도 그 병에 대해선 들은 적이 있었다.
  "샐리가 우울증에 빠진 건 그때부텁니다. 의사들이 안정제와 진정제 등을
처방했지만, 그런 약들은 증상을 잠시 숨길 뿐이죠. 실제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잠시 그 집을 떠나 있는 게 좋겠다고 친구들이 권하더군요. 마음을
따라다니는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게 좋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전 이 트레일러
하우스를 샀습니다. 그 이후 줄곧 이 차를 몰고 여행을 다니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도
별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는 뭔가 위로가 될 말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서로에게 여행길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각자의 차안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알겠어. 전에 샐리 밀러를 어디서 봤는지. 아니, 내 말은 저 트레일러에 사는
샐리 밀러가 아니라 그녀가 갖고 있는 그 무기력한 표정의 얼굴 말이야. 내가 인턴일
때 여성들의 정신병동에 잠시 근무한 적이 있었거든. 그곳에서 샐리처럼 우울증과
절망감에 빠진 여성들을 많이 본 적이 있어. 영혼이 빠져 달아난 신체와 텅 빈 의식
속에 갇혀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남편은 탄식조로 말했다.
  "불쌍한 샐리! 저런 병에서 회복될 전망은 오늘이나 18세기나 암울하긴 마찬가지야.
그 병의 희생자들은 으레껏 정신병원의 우리에 갇히게 되지. 왜냐하면 사람들은 충격
때문에 그 증상이생긴 것이니까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또다른 충격을 가하면 증세가
역전되리라고 믿고 있거든."
  남편은 타이어를 발로 차고 오일을 체크하면서 집으로 돌아갈 여행 준비를 했다.
남편이 손을 씻기 위해 홈카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내 일본제 필기함의 작은
서랍들에 담긴 물건을 모두 꺼내는 중이었다.
  남편이 놀라서 물었다.
  "지금 뭘하고 있는 거야?"
  내가 대답했다.
  "샐리에게 이 필기함을 선물하려구요. 잘 포장해서 리본을 매달아 샐리에게 줄
거예요."
  남편은 펄쩍 뛰었다.
  "당신 정신 나갔어? 그 물건이 우리 두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잊었어? 그게 싸구려 물건인지 알아?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지? 이유가 뭐야?
그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야."
  내 행동이 실수라 해도 틀림없이 그 뒤켠에는 어떤 강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
강한 이유를 딱이 꼬집어 말할 순 없었다. 설령 안다 해도 그것을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이 물건은 내 꺼니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녜요?"
  그리고 나서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필기함을 포장하고 카드를 동봉한 뒤, 서둘러
밀러 부부의 트레일러 하우스로 가서 문앞에 놓아둔 뒤에 그곳을 떠났다.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싸우게 될까 봐
염려해서였다. 날이 저물어갈 무렵 추위와 어둠이 우리들 사이의 긴장을 더 커지게
했을 때 마침내 내가 침묵을 깼다.
  "샐리가 그 필기함을 처음 보았을 때를 잊었어요?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돌아왔던
것을 당신도 목격했을 거예요. 만일 그녀가 그 상자를 곁에 두고 있으면 그것을 볼
때마다 그녀를 사로잡고 있는 우울증이 조금씩 벗겨져 마침내 완전히 치료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난 생각했어요. 당신도 알듯이 꺼져가는 불씨에 훅하고 바람을
불어주면 불꽃이 살아나고, 다시 몇차례 더 불어주면 마침내 큰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기도 하잖아요."
  남편이 맞받아쳤다.
  "당신은 아직도 동화 속 이야기를 믿고 있군. 차라리 당신이 뜨개질해서 만든
곰인형 중 하나를 선물할 수도 있었잖아. 샐리는 신이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생의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어. 절망은 그녀의 피난처야. 조만간 그녀도
정신병원에 가게 될 거라구."
  그녀에 대한 남편의 평가는 줄곧 내 마음을 괴롭혔다. 왜냐하면 나는 그후로도 밀러
부부로부터 어떤 감사의 말이나 편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의 일년이 지났을 무렵, 하루는 집에 돌아왔더니 우리의 소중한 필기함이 현관
입구의 테이블에 놓여져 있었다. 금방 눈에 띄도록 누군가 일부러 그자리에 놓아둔
것이 분명했다.
  남편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배달되었어. 주소에 우리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길래 당신이 올
때까지 뜯지 않고 기다렸지. 여기 편지도 있어. 당신이 뜯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는 봉투를 뜯고 편지를 읽었다.

  캐더린과 의사 선생님께.
  일찍 편지를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읽으시고 나면 아마도 제 편지가 늦어진 이유를 이해하시고 저를
용서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알버트가 저에게 당신들이 준 선물을 내밀던 날이 기억나는군요. 전 그것을 뜯어
보지도 않은 채 제 자신의 고독한 세계 속으로 뒷걸음질쳤습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제가 맨 처음 본 것이 바로 그 필기함이었습니다. 창문으로 스며들어온 햇살이
그 상자 위에서 빛나고 있더군요. 마치 어두운 극장 안에서 혼자 서 있는 연기자에게
조명 등이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 단순한 선과 절묘한 장인 정신이 한 줄기 빛처럼 저의 우울한 마음 속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우아함과 아름다움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필기함이 가진
정교함과 세밀함에 사로잡혀 그 서랍들과 자물쇠, 경첩, 서랍 손잡이 등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놀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옷을 입고 제가 병에 걸리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쇼핑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앓던 병을 우울증이라고 부릅시다. 저도 이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필기함 덕분에 저는 처음으로 외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저는 날마다 펜과 잉크와 종이들을 사러
다니고, 새로운 장소들을 방문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시를 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에 우리는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일본의 미술과 전통예술에 대한 책들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 필기함에
대해, 그리고 일본 목각품의 특별한 기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또
금세기 초에 일본으로 이주한 영국 문헌 학자 라프카디오 허른의 작업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일본 여자와 결혼한 뒤 생애 대부분을 일본의 설화와
전설과 고전작품들을 번역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호라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호라이는 겨울도 없고, 꽃들도 시들지 않는 장소이지요.
그곳에선 마음이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저는 제 필기함에 호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저는 또 샌프란시스코의 박물관에 가서 일본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박물관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알버트는
직장으로 돌아갔고 저 역시 저의 새로운 취미, 박물관 일, 집안의 허드렛일 사이에서
너무 바쁘고 너무 흥분이 되어 우울증에 빠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무렵 저는 과거의 행복을 되찾았기 때문에 당신들에게 편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그때 저는 제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옛날의 두려움과 의심이 되살아나서 저는 다시금 글쓰는 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지난 11월에 사랑스런 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생후 두 달이
되었구요. 마침내 저는 제 자신이 과거로부터 벗어났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제
당신들 두분에게 정직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이 편지를 쓸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왜 제게 이 필기함을 주었는지 종종 의아했습니다. 동정심
때문이었을까? 사려 깊지 못한 충동적인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호라이가 신코로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신코로는 신기루라는 뜻이지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어떤 환영을 말합니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순간적인 영감을 통해 당신들이 그 만질 수 없는 어떤
세계를 느꼈음을. 당신들은 그 선물이 분명히 어떤 작용을 하리라는 걸 알았던
것입니다.
  여기 호라이 상자를 돌려 드립니다. 제가 전보다 이것에 애착이 덜해서가 아니라,
당신들이 이것을 갖고 있으면 또다른 불행한 영혼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또다시 그런 경우가 없길 바랍니다. 저는 이 호라이 상자가
영원히 우리의 만남을 기억하게 하는 행운의 물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샐리로부터.
  <추신> 우리는 어린 딸의 이름을 캐더린으로 정했습니다.

  물론 편지를 다 읽었을 때 나는 두 뺨에 눈물이 흥건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몸을 돌리고서 안경을 닦았다. 하지만 그가 애초에 가졌던 차가운 의학적인 태도와
처음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눈시울이 붉어져 있음을 나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 후로 우리가 제우스를 타고 특히 크리스마스 무렵에 여행을 떠날 때면 남편이
먼저 나에게 호라이 상자를 꼭 챙겨갖고 가라고 충고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말한다.
  "이 상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한 의지를 일깨워 주는 좋은 상징이야. 게다가
크리스마스 트리보다는 훨씬 자리를 적게 차지 하거든."
  <캐더린 포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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