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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마음을] 두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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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두 가족

  금세기 초에 일본에서 이민온 한 가족이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자리잡았다. 그들은
장미 농장을 일구어 일주일에 세 번씩 이른 아침마다 장미꽃을 트럭에 싣고
샌프란시스코로 배달하는 사업을 정착시켰다.
  또다른 가족은 스위스에서 이민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장미 재배 사업을 했다.
이들의 장미꽃은 샌프란시스코 꽃시장에서 널리 알려져 두 가족은 웬만큼 성공을
거두었다.
  거의 40년이 넘도록 두 가족은 이웃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아들들이 농장을
물려받았다. 그러다가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공격했다. 다른
식구들은 이미 미국인으로 귀화했지만 그 일본인 가정의 아버지만은 그때까지도
고집스럽게 일본 국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일본인 가족은 곧 강제 수용소로
끌려갈 처지가 되었다.
  그들이 끌려가고 나면 장미 농장은 폐허가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반세기
가까이 열심히 일궈 놓은 사업이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판이었다. 이때
이웃에 사는 스위스인 가족이 찾아와서 말했다.
  "아무 염려하지 마시오. 우리가 당신들의 농장을 대신 돌봐 주겠소."
  수없이 감사의 절을 하는 일본인 가족에게 스위스인 가정의 아버지는 말했다.
  "당신들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얼마 후에 일본인 가족은 콜로라도 주 그라나다에 있는 황폐한 장소로 강제
이주당했다. 그 강제 수용소는 아주 형편없었다. 기름 종이로 지붕을 한 군대
막사에다, 철조망과 무장한 경비대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꼬박 일년이 흘렀다. 그리고 다시 두 해가 지나고 세 해가 지났다. 일본인 이웃의
수용소에 억류돼 있는 동안 그들의 친구인 스위스 가족은 두 군데의 장미 농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기 전까지 일을
했고, 아버지는 하루에 16시간 이상을 일했다.
  어느날 유럽에서의 전쟁이 막을 내리자 일본인 가족은 다시 짐을 꾸려 열차에
실렸다. 오랜 기간의 유배가 끝나고 마침내 그들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그 가족이 열차에서 내리자 그들의 이웃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일본인 가족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잘 다듬어진 장미 농장이 햇빛을 받으며 건강하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스위스인 가정의 아버지가 은행 예금통장을 일본인 아버지의 손에 건네
주었다.
  일본인 가족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 역시 장미 농장만큼 잘 관리되어 있었다.
거실의 테이블 위에는 이제 막 피어나기 직전의 붉은색 장미 송이 하나가 꽂혀
있었다. 한 이웃이 다른 이웃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다이안 래이너. 캐롤 브로드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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