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예화 [마음을] 마지막 춤

첨부 1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마지막 춤

  어렸을 때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임무는 땔감으로 쓸 장작을 만드는 일이었다. 난
그 일을 좋아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숲으로 가서 적당한 나무를 골라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힘센 벌목꾼들처럼 하루 종일 함께 일했다. 우리의 가정과 집안의
여자들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이 아버지와 내게 주어진 신성한 의무였다. 그렇다.
아버지는 일찍부터 나에게 가족을 보호하고 돌보는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것은 아주 기분좋은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내가 커다란 나무둥치를 적어도 500번이상 도끼질을 해야 장작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아, 난 그 숫자를 넘기지 않으려고 얼마나 열심히
도끼질을 했던지!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이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일부러
넉넉한 숫자를 제시하셨다. 499번째의 도끼질을 휘둘러 마침내 그 큰 나무를 작은
장작들로 쪼개 놓았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하는가를 아버지는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장작을 다 패고 나면 우리는 추위 때문에 콧물을 흘리면서
그것들을 집으로 운반했다. 그리고는 음식과 따뜻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불가로
향하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와 나는 화요일 밤이면 곧잘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우리는 주로 카우보이들의 생활을 그린 연속극을 보았다. 아버지는 과거에 그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드넓은 목장에서 말을 타고 달린 적이 있다고 나를 믿게
만드셨다. 연속극을 보면서 아버지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항상 예측하셨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하시는 말을 믿었다. 아버지는 그 주인공들과 친구였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난 무척 자랑스러웠다. 최고의 카우보이들과 함께 달렸던 진정한 카우보이가 바로
나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나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그 사실을 자랑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나를 비웃으며 아버지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친구들과 싸워야 했다. 하루는 내가 심하게
얻어맞았다. 내 찢어진 바지와 부르튼 입술을 보고는 담임 선생님이 나를 한쪽으로
불러서 어찌된 사정인지 물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하나씩 밝혀지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는 나한테 진실을 말해야만 했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코가 납작하게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버지를 너무도 사랑했다.
  내가 열네살이 됐을 때 아버지는 골프를 시작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캐디였다.
아버지는 경기를 마치고 골프장을 떠나실 때면 늘 나한테 서너 차례 골프채를 휘둘러
보게 하셨다. 나는 골프가 좋아졌고, 어느새 썩 잘하게 되었다. 이따금 아버지는 두
명의 친구분과 동행하셨다. 아버지와 내가 한 팀이 되어 그들과 경기를 해서 이길
때면 나는 너무 기뻐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우리는 한 팀이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 번째로 좋아한 것(물론 첫 번째로 좋아한 것은 당신들의
자식인 우리들이었지만)은 춤이었다. 춤에 있어서 두 분은 가히 전설적이셨다.
무도회장에 모인 군중들은 나의 부모님이신 마빈과 맥사인에게 '무도회장의
M&M'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두 분의 낭만적인 환상이 실현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춤을 추실 때면 항상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셨다. 두 명의 누이동생 낸시와
줄리, 그리고 나는 언제나 부모님을 따라 무도회장에 가곤 했다. 얼마나 즐거운
한때였던가!
  일요일 아침 교회에 다녀오고 나면 아버지와 나는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일요일에는
그렇게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오트밀과 건포도 등을 식탁에 차리면서 탭댄스
연습을 하곤 했다. 그것도 엄마가 아끼는 새로 왁스칠한 깨끗한 마룻바닥 위에서!
하지만 엄마는 그것에 대해 불평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차츰 소원해져 갔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 수업 이외의 활동들이 내 시간을 빼앗기 시작했다.
나와 어울려 다니는 패거리들은 주로 음악하는 아이들과 카페에서 디스크 자키를 보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운동을 즐기고, 뮤직그룹을 만들어 음악을 했으며, 열심히
여학생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아버지가 밤에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더 이상
나의 활동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되셨을 때 나는 얼마나 상처받고 외로웠는지 모른다.
나는 특히 하키와 골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나는 화가 나서 혼자서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두고 보세요, 아버지! 난 해내고 말 거예요. 아버지가 없어도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구요!"
  나는 하키 팀과 골프 팀의 주장 선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참여한 경기에 한
번도 구경을 오지 않으셨다. 나는 마치 아버지의 무관심이 나를 인생의 처절한
생존자로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가 필요했다. 아버진 그것을
알고 계셨을까?
  어느덧 술을 마시는 것이 나에게 사회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영웅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또는 내가 매우
힘든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따금
아버지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기분이 고조되었을 때는 우리 두 사람의 사이가 다시
가까워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특별한 감정은 더 이상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다. 열여섯살 이후 스물일곱살이 될 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11년 동안이나 말이다!
  그러다가 그 일이 일어났다. 어느날 아침 아버지와 나는 직장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면도를 하고 있는데 나는 아버지의 목에서 혹 같은 것을 발견했다.
나는 물었다.
  "아버지, 목에 난 게 뭐예요?"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도 모른다. 아무래도 오늘 의사한테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두려워하시는 걸 본 것은 평생에 그날 아침이 처음이었다.
  의사는 아버지의 목에 난 멍울이 암이라고 판명했다. 그후 넉달 동안 나는 날마다
아버지가 조금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무척 혼란스러워 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진 늘 건강하셨다. 근육질로 뭉쳤던
80킬로의 체중이 뼈와 가죽뿐인 55킬로로 줄어드는 걸 보면서 난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아버지에게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과 싸우느라 나에 대해,
또 서로에 대한 우리의 감정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때까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날 저녁 내가 병원에 도착했더니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하루종일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이 집에 가서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내가 밤 간호를 맡기로 했다.
아버지는 내가 병실에 들어갔을 때 잠들어 계셨다. 나는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따금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나셨지만 몸이 너무 허약해 지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하시는 말을 나는 거의 알아들을 수 조차 없었다.
  밤 11시 30분쯤 되었을 때, 나는 졸음이 밀려와서 간호사가 병실에 가져다 준 보조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갑자기 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내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계셨다.
  "릭! 릭!"
  내가 일어나 앉자 아버지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난 춤을 추고 싶다. 난 지금 당장 춤을 추고 싶어."
  처음에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그냥 그곳에
앉아 있었다. 다시 아버지가 고집을 부렸다.
  "난 춤을 추고 싶다. 얘야, 우리 마지막으로 춤을 추자꾸나."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아버지 앞에 섰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절을 한 다음
아버지에게 요청했다.
  "아버지, 저와 함께 춤을 추시겠습니까?"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는 아버지가 침대에서 내려오시는 걸 거의 도와 드릴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오셨다. 그 기운은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기운임에 틀림없었다. 손에 손을 잡고, 팔에 팔을 두르고, 우리는 병실 안을 돌며 춤을
추었다.
  어떤 작가도 그날 밤 우리가 나눈 에너지와 사랑을 묘사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버지와 나는 춤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 사랑과 이해와 서로에 대한 염려 속에서
하나로 합쳐졌다. 우리의 전 생애가 바로 그 순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탭댄스, 사냥, 낚시, 골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그 순간에 한꺼번에 경험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카세트 테이프나 음악을 틀어줄 라디오가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해 온 모든 노래,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노래가 대기
속에서 울려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좁은 병실은 내가 춤을 추어 본 어떤
무도회장보다 넓었다. 아버지의 두 눈은 내가 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어떤
광채와, 슬픔에 찬 기쁨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춤을 추는 동안 우리의
눈에서는 둘 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너무도 짧은 시간을 남겨두고 우리 둘 다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러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갖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이윽고 춤이 멎었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침대에 눕도록 도와 드렸다. 아버지는 이제
무척 지쳐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 손을 힘있게 잡고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고맙다, 아들아. 오늘 밤 네가 여기에 있어 줘서 난 정말 기쁘다. 나한테는 너무도
의미있는 시간이야."
  이튿날 크리스마스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그 마지막 춤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의미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지혜와 행복의
선물이었다.
  아버지, 전 아버지를 사랑해요. 이 다음에 하늘의 무도회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또다시 춤을 추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겠어요.
  <릭넬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