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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눈 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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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석유 보일러가 고장이 난 모양이다. 핑하고 돌다가 갑자기 피시시
꺼져버리곤 했다. 답답하기만 했다. 보일러 시공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에야’가 찬 모양이란다. 어디어디를 눌러보고 다시 전원을 넣어보란다.
시키는 대로 해보면 핑하고 터졌다가는 피시시 그쳐버리곤 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시공자가 왔다. 다짜고짜 ‘에야’가 찼다며
‘에야’를 빼내기 위해 물을 먼저 빼내야 된다며 호스를 가져오란다.
호스를 어디에 끼우니 뜨건 물이 호스를 따라 나와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마당에 퍼지는 것이었다. 이때 어머니께서 재빨리 마당에 나오시더니
마당에 퍼지는 뜨건 물 가까이에서 이렇게 조용조용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눈 감아라, 눈 감아라.” 나는 그 모습이 너무도 엄숙하고 진지하여
그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그 말씀이 끝나자 어머니께 여쭈어보았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어머니의 말씀은 너무나 진지하였다.
뜨건 물이 땅에 스며들어 땅속의 벌레들 눈에 닿으면 눈이 먼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벌레들에게 눈을 감으라고 일러준다는 것이다.
캄캄한 땅속의 벌레들의 눈. 어머니와 내 둘레 캄캄한 어둠 속의 눈들이
반짝이며 별빛처럼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 김용택, 창작과비평사,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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