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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획 하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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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소설가가 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소설가가 되었다. 그 다음엔 유명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우연히 운이 좋아 나는 유명해졌다. 그 다음엔 당연히 돈 걱정이 없어지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생활비를 다
쓰고 나서도 통장에 늘 100만 원만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94년 여름 내가 낸 세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니 돈도 생겼다.
이제 1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를 자고 나면 통장으로 수천만 원의 인세가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토록 사람이 그리웠던 나와 연결하고자 전화벨은 끝없이 울려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토록 원하던 돈과 명예가, 그리고 몰려드는 인터뷰가, 행복해지는 데 이토록 쓸모없는 것인 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어쩌면 나는 그 시기를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것, 놀랍게도 행복에도 자격이란 게 있어서 내가 그 자격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할 서튼처럼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돌이키기 힘든 아픈 우두자국을 내 삶에 스스로 찍어버린 뒤였다. 그 쉬운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해 청춘과 상처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18년이었다. 그리고 돌아가 나는 신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항복합니다, 주님 하고.
써놓고 보니 우리말이 이상하기도 하다. 항복과 행복, 획 하나 차이의 낱말….
- 공지영, 김영사, <수도원 기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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