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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발걸음 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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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는 노인이 매일같이 공원에 나와 앉아 있었는데, 그 노인은 뭐든지
숫자 헤아리기를 좋아했다. 노인은 공원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렸고, 나무며 꽃들의 수도 헤아렸다. 그의 눈에 10개월쯤 된 어린아이와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사내는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 다리에 힘이 없는지 한 발짝을 떼고는 곧 넘어지곤 했다. 사내는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우며 다시 걸음마를 시키지만, 아이는 계속 넘어졌다. 한 시간
가까이 했을까. 아이가 지쳤는지 잠시 칭얼대더니, 사내의 무릎에 누워 잠에
빠지고 말았다. 이윽고 잠에서 깬 아이에게 해질 무렵이 되도록 걸음마 연습을 시키던 사내는 공원을 휘 둘러보며 일어섰다. 사내는 마침 벤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보셨어요? 오늘 제 아이가 세 걸음이나
걸었습니다!” 노인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런데 내가 보니, 그애는
마흔여덟 번이나 넘어지더군.” 사내는 팔에 안은 아이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추더니, 노인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걸음마를 배우는 데 마흔여덟 번쯤 넘어진 게 뭐 대숩니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구요.” 사내가
제 아들을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멀어져가는 동안 노인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신은 저 사내와 같으신 게야. 그분은 잘못한 횟수보다,
영원한 사람의 길을 가는 우리의 발걸음 수에 더 관심이 많으시지.”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진 노인은 돌아가는 길에 가로등 수를 헤아리는 것도 잊어버렸다.
- 고진하, 생각의 나무, <부드러움의 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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