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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평화로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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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아내의 목소리가 방안에서 들려온다.
지섭은 기도를 멈추고 아내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숲속에 매미 한 마리가 살았어요, 매미는 키가 큰 느티나무에 앉아
뜨거운 여름을 노래했지요. “매매 매~앰.” 그때 귀여운 꼬마가 나무 아래에서 매미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매미야 나하고 얘기 좀 할래?” “넌 누구니, 꼬마야?” 매미는 잎사귀 뒤로 몸을 감추며 말했어요. “나는 저 아랫마을에 사는 아이야.” “그런데 꼬마야, 너는 내가 보이니? 아이들이 잡아갈까봐 이렇게 숨어 있는데.” “나는 노랫소리만 들어도 너희들이 있는 곳을 알 수가 있어. 그런데 매미야,
너희들은 왜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 거지? 조용히만 있으면 아이들도 너희들이
있는 곳을 모르잖아.” “그건 말야….”
윙윙거리던 냉장고의 숨소리가 멈추고 고요가 흐른다. 아내의 이야기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내는 아기 옆에서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아내의
손바닥 위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그림책…. 지섭은 그림책을 들어 가슴에 안았다. 그런데 매미도 귀여운 아이도 느티나무 그림도 책 속엔 있지 않다. 아내는
손끝으로 점자를 더듬어 매일 밤 아기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 아, 눈송이처럼 수북히 내려앉은 많은 점자들. 아기는 알까? 그 많은 점자들이 엄마의 손끝에서 매미가 되고 아기가 되고 느티나무가 된다는 것을…. 감아도 감기지 않는 아내의 두 눈을 바라보며 방을 나왔다. 볼 수 없는 그의 눈에서도 총총한 샛별이 떨어진다.
- 이철환, 삼진기획, <연탄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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