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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둘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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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무실에 나가고 있습니다. 칠순이 넘은 소장인 남편과 그의 아내인 내가 유일한 직원인, 조그만 규모의 사무실입니다. 아이엠에프 이후 가장 타격을 받은 계통의 업종이지만, 젊은 사람들은 조금씩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는데, 이곳은
역부족입니다. 문을 닫는 게 적자를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지요. 그러나 그 말은 차마 못합니다. 일이 있건 없건 정시에 출근하고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에게
그 말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일생을 통해 가장 초라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남편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일은, 내게 있는 시간을 그에게 주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이면 전철을 타고 같이 출근하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사무실 청소도 하고, 전화도 받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못된 아내입니다. 결혼한 이래 40년을 아이들의 엄마로서만 살았습니다. 아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어미로서만 존재했던 아내. 그런 아내를 무던히
참아준 남편입니다. 사무실에서 그는 주인이고, 부하인 나는 소장인 남편에게
절대 복종을 합니다. 유능한 비서가 되어, 때 맞추어 알맞은 차를 끓입니다.
이런 일들에서, 나는 못된 아내였던 빚이 조금씩 갚아지는 듯한 기쁨을
누립니다. 오늘은 토요일. 일이 없는 사무실에도 토요일은 망중한(?)의 여유가 있습니다. 커피를 진하게 끓이며 음악 감상을 합니다. 노부부는 젊은 시절
한 번도 나누지 못했던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의 백발을 바라보았습니다.
- 유선진, 사이버 참여연대 게시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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