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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나의 고구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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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레 가꾸는 화초들에 꽃이 피기 시작할 때면 나에게 보여주곤 하는
수녀님이 계신다. 그런데 하루는 수녀님이 키우는 화분들 사이로 파란 잎을
틔우며 무럭무럭 크고 있는 고구마가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이렇게 물에
담긴 고구마를 들여다볼 때면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며 수녀님에게 귀뜸해
드리고 돌아나오는데, 가슴 한켠이 싸하게 아려온다. … 오랜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며 어렵게 결정했던 길. 하지만 뜻하지 않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려던 길을 미뤄야 했던 시절. 그 곁에서 말없이 날 지켜보며
기도해주고 그림자처럼 사랑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다. 하늘로 떠나는 후배 수녀님 병상을 지키며 그분에게 나를 위해 하늘에서 기도해줄 것을 부탁했다는 얘기를 다른 분에게서 전해 듣고, 난 한참을 울었었다. 그 사랑에 조그마한 보답이라도 드리고팠던 마음에 나는 고민에 잠겼고, 그래서 떠올린 것이 내 방에서
막 새순을 틔우며 자라고 있는 고구마였다. 짧은 동안이지만 내 마음이 머물렀던 고구마를 그분에게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분은 내가 선물한 고구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키우셨던 걸까.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그분은 내 손을 꼭 잡고 한동안 말없이 걷고 나서 말씀하셨다. “그 고구마 우리 영민이 수녀원 들어올 때까지
키울 거다”라고. 하지만 나는 끝내 가지 못했다. … 그리고 오늘 난 파란 잎들이 피어 있는 고구마를 축일 선물로 받았다. 내 지난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셨던 그 수녀님에게서. 그런데 책상 위에 놓인 그 고구마를 보며 눈물이 고여오는 건 왜일까. 지난 기억 때문에, 아님 내 곁에 놓고간 그 사랑 때문에….
- 권영민,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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