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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카프카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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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뒤 독일에서 천문학적인 인플레가 벌어졌던 겨울. 제대로 먹지 못해 결핵을 앓던 카프카가 공원을 산책하다가 어린 소녀가 슬피 우는 것을 보았다. 인형을 잃은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카프카가 다가가서 말했다.
“네 인형은 말이야, 그냥 여행을 떠난 거란다.” 놀란 소녀에게 그가 덧붙였다.
“나한테 편지를 보내서 그러던걸.”
“잘 있대요? 편지는 어디 있죠?”
“마침 집에 두고 왔구나. 네가 내일 여기로 다시 오면 가져다주마.” 그날밤 카프카는 인형의 편지를 썼고, 다음날 그 자리에서 소녀에게 그 편지를 읽어주었다.
만남은 3주일 동안 계속되었다. 인형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식을 하고, 마침내 소녀를 다시 못 만나는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것으로 편지는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목숨이 소진해가는 작가가 한 소녀를 위하여 썼다는 30여 통의 인형편지. 그 편지를 찾겠다고 지금 한 미국 연구가가 베를린을 헤매고 있다.
아름답지만 하도 허황해서 가볍게 읽었던 그 기사가 이상하게도 자주 떠오른다.
카프카의 문학작품 뒤에는 작품 못지않은 밀도를 지닌 일기와 많은 편지들이 있다. 모두 아름답다. 하지만 가끔, 찾아질 리 없는 그 ‘인형편지’가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편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찾고 못 찾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이 세상 한구석에 그런 ‘한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가.
‘거짓말’을 쓰는 그런 황당한 작가가, 또 그런 인간이 소중한 줄 알기에 몇 장의 종잇장을 찾아 헤매는 황당한 사람 한 명이 이 삭막한 세상에 빛을 밝힌다.
- <한국일보> 2001년 3월 9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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