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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유리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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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란은 자신의 문학을 ‘유리병 편지’라고 한다. 어딘가에 닿으리라는 희망에 유리병에 담아 망망대해에 띄우는 편지 말이다. 정말로 유리병에 담겨 전해진 글을 만나기도 했다. 폴란드의 게토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유다인들이 전멸에 직면하자 마지막 순간에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시인 한 사람을 피신시킨다.
이런 사명을 가지고 살아남은 시인 카체넬존은 그 일을 담은 시 여섯 부를 만든 후 체포되어 가스실로 직송되었다. 그중 유리병에 넣어 파묻었던 한 부가 발견되어서 몇 년 전에 출판되었다. 그 글을 옮기면서 왜 글을 배워 이런 인간의 야만을 알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렇지만 이렇듯 남겨져 내 손에까지 와 닿은 글에서 결국 인간의 존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글을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이기를 그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유리병 편지’를 받아드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얼마 전 만난 초면의 루마니아 교수는 오로지 첼란을 읽었다는 이유로 떠나는 기차 차창까지 다가와, 꼭 다시 오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아픔이 담긴 글귀를 같이 읽었다는 사실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가깝게 하다니 그만큼 세상사는 일은 어디서나 힘들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체넬존이며 첼란뿐이겠는가.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그만 염치없게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금도 내가 읽고 쓰는 게 내가 먹는 곡식값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그러나 ‘유리병 편지’를 받아들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것을 다시
몇몇 손에 전해주는 일도 세상 한구석을 일구는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전영애, <한국일보> 2001년 7월 6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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