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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금부터! 천천히 생각하면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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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마을 목욕탕에 가보셨습니까?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무 바닥에나 침과 가래를 뱉는 사람, 몸을 씻지도 않고 탕에
들어가는 사람, 쓰지도 않는 물을 틀어놓고 면도를 하거나 비누칠을 하는 사람, 비누가 바닥에 떨어져 물에 팅팅 불어터졌는데도 줍는 사람 하나 없고, 날카로운 일회용 면도기가 바닥에 뒹굴고, 비누마다 머리카락이 박혀 있고, 때를 밀거나 비누칠하고 앉았던 의자에 때와 비누가 그대로 있는데도 씻어놓지도 않고
일어나버립니다. 쓰다 버린 수건은 쓰레기통이고 수건통이고 가리지 않고
던져버리고,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물장난을 치다가 머리를 깨기도 하는 목욕탕 속을 들여다보면 ꡐ나ꡑ만 있고 ꡐ우리ꡑ는 없는 세상의 흐름을 봅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 사람도 없는데 선풍기는 돌아가고, 텔레비전은 목욕탕
안에서도 밖에서도 봐주는 이 없는데도 혼자 떠들다 지쳐 있고, 빗과
드라이기들은 쓰고 나면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바닥에는 발을 닦고 그대로 둔
수건들이 어지럽게 밟히고, 흩어진 손톱 발톱들이 발바닥을 찌르고….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목욕비가 올랐다는 것이고, 넓고 고급스러워졌다는 것이고, 밤새 먹고 마신
술독을 빼거나, 자기도 모르게 부쩍 찐 살을 빼기 위해서 목욕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마을 목욕탕에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ꡐ나ꡑ만 있습니다. ꡐ돈ꡑ을 주고 들어왔으니 ꡐ돈ꡑ의 자유만 있습니다.
물의 소중함 따위는 없습니다. 2002년 2월, 우리들의 얼굴입니다.
-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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