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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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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벌써 40대 중반, 슈퍼에서 많은 소금 봉지들을 두고 딱 하나를 고르기 어려워하는 것은 소금을 몰라서가 아니라 무공해 소금을 찾는 시대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하게 그 옛날 두 가지 소금으로 충분했던 시절, 장독대에서 나는 소금항아리를 못 찾아 늘상 항아리 뚜껑을 열어봤어야 했다. 두 항아리 중 맨 뒤 굵은 소금항아리는 구분이 쉬운데 앞쪽에 섞여 있는 가는 소금항아리는 수시로 물행주를 들고 닦으시는 데다가 조경의 미까지 즐기시느라 자꾸 항아리 위치를 바꿔놓으시는 친정어머니의 부지럼함 덕분에 가끔 장독대에 들어가는
나로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소금이 떨어질 때쯤이면 이른 아침부터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고 깡마른 체구에 팔순도 넘어뵈는 주름진 얼굴로 ‘고흥 할머니’가 “아즈메, 고흥 소금사!” 하고 나타난다. 우리 동네 소금판매 고정 출연 스타였다. 어머니도 장독대에서 항아리를 꺼내 마루에 올리셨고 왕왕, 개들이
달려들어도 보무도 당당하게 마루까지 오셔서 소금을 꾹꾹 항아리 주둥이까지 눌러 채우셨다. 값을 챙겨 잰걸음으로 나가시면, 어머니는 항아리를 제자리에
갖다놓으시고 아침 햇살 아래서 반짝반짝 닦고 계셨다. 그 소금을 사주시던 동네
어른들은 이젠 한분도 살아 계시지 않고 살림만 아시던 우리 어머니도
긴 세월의 무게를 못 이기시고 병원 요양원에 안쓰러이 묶이셨다.
“나만 남았어야… 언제 올래?” 채광을 무시하고 지은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버림받은 아이처럼 서 있는 저 빈 항아리 두 개가 길이 멀어 자주 못 뵙는
어머니를 그리며 서러워질 때마다 내 동무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 국봉희,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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