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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넉넉한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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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골 교회에서나 볼 수 있는 성미(誠米)는 뿌리 깊은 토착적 신앙 전통이다. 복음이 들어오
기 전에 조선의 부인들은 밥을 지을 때마다 가족의 건강과 복을 빌면서 쌀을 한 줌씩 따로 떼어 집
안을 지켜 준다는 ‘성주’에게 바쳤다. 그렇게 성별한 쌀을 모아 두었다가 고사를 지낼 때 떡쌀로 사
용했다. 그런 쌀을 보관하는 항아리를 성줏단지 혹은 신줏단지라 하여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
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우상 섬기는 일이 죄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집안 식구를 위한 기도
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부인들은 항아리에 십자가를 그린 후에 여전히 쌀을 떼며 가족의 건강을
주님께 빌었다. 신줏단지는 ‘주 단지’(Lord’s post)로 바뀌었고 우상에게 바치던 쌀은 전도자의 ‘하
늘 양식’이 되었다.
개성에서 시작된 성미 제도는 선교사를 통해 다른 지역에도 소개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부인들의 성미로 전도자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자립 교회’ 전통을 수립했다. 가난했지
만 넉넉하게 연보할 줄 아는 초대 교인들로 인해 일찍이 자립 교회를 이뤘던 것이다. 자발적으로
전도하는 날연보와 십일조회, 주님께 기도하며 바친 쌀로 전도자의 생활을 책임지던 성도들의 헌
신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는 짧은 기간 안에 성장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이 칭찬한 초대교회 성도
들의 ‘넉넉한 연보’, 바로 그 결과였다.
「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 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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