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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천천히,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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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농부들이 경운기를 몰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녁 밥상 차리기도 전에 달이 먼저 뜨고…. 온몸이 지쳐 만지는 살마다 아프다는 농부들과 한해를 꼬박 먹고 자고 함께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44년 긴 나날 동안 늙은이들이 애터지게 농사 지은 곡식들을 도시에서 그저(?) 받아먹고 살면서
가슴 저미도록 고마운 마음을 가져본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눔들아, 밥 한 알 남김없이 꼭꼭 씹어 먹어야 밥 한 알 귀한 줄 안다. 에비시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몰라도 되지만 밥 한 알 귀한 줄은 알고 살아야 사람이 되제.” 우리 할아버지 가끔 밥상 앞에서 일러주셨지만, 밥 한 알이 얼마나 귀한지 몸으로 느끼지 못했으니 한쪽 귀로 들어왔다가 한쪽 귀로 금세 빠져나갔습니다. 내가 내 손으로 논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가꾸고부터 우리 할아버지 말씀이 저절로 귀에 들어왔습니다. 들어와서 깊이 박혀버렸습니다. 밥 한 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입에 들어오는지 그제야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밤과 낮, 비와 바람, 이슬과 서리, 벌과 나비, 하늘과 땅과 농부들의 손길이 어우러져 밥 한 알이 내 입에 들어온다는 것을 어찌 그저 몸으로 느끼겠습니까. 4월이면 부지깽이와 죽은 귀신도 일어나서 일손을 거든다는 농사철입니다. 제때 씨를 뿌리지 않으면 한해 농사 망쳐버릴 수 있으니 어찌 농부들의 애간장이 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바쁜 농사철에 도시 사람들은 꽃구경 다니랴 정신이 없고, 배불리 먹고 여기저기 붙은 살을 빼기 위해 헬스장, 수영장, 찜질방으로 돌아다닙니다. 한겨레이면서 우리는 이렇게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서정홍, <시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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