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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시장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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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시장 갈 때마다 나를 데리고 간다. 내가 시장 구경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 때면 시장을
한바퀴 돌다가 오는 버릇이 있었다. 한결같이 열심히 살아가는 시장 사람들을
만나면 없던 힘까지 생겼으니까. 탑을 쌓듯이 보기 좋게 딸기를 쌓는 아주머니, 십 년을 변함없이 똑같은 자리에서 생선을 파는 할머니, 정리해고 되어
붕어빵 굽는다는 젊은이도 만날 수 있는 시장에 가면 큰 산만한 내 고민덩어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을 이끌어주던 시장이 날이 갈수록
밝지가 않아 가슴이 아프다.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큰 가게들(백화점, 삼성 홈플러스, 이마트, 여러 가지 할인매장들) 때문이다.
큰 백화점에서 선착순 100명에게 이불을 공짜로 준다고 하면 가게 문 열기
전부터 수백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할인매장에서 오늘 하루, 라면이나
초코파이 싸게 판다고 하면 자가용까지 몰고 가는 쓰레기문화가 판을 치게
되었다. 큰 가게에 가면 물건들 골라가면서 살 수 있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책도 사고, 여러 가지 눈요기거리도 있으니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그래서 마을
가까이 있던 책방도, 구멍가게도, 이불가게도 모두 문을 닫아버렸다. 날이 갈수록 ‘마을공동체’가 사라지고 우리 자신도 모르게 편리함에 젖어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따뜻한 마음까지 다 빼앗겨버렸다. 나는 오늘도 아내와 동네 시장에
간다. 할머니가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도 사고, 아들놈들 구워줄
고등어 몇 마리 사고, 골목 끝에서 붕어빵도 사 먹고….
- 서정홍,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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