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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한없이 주고 또 주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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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전성당에서 성령세미나가 열렸다. 숙연한 분위기로 단상과 단하가 호흡이 일치되어 자세를 흐트릴 새가 없었다. 휴식시간이 되어서야 앞자리의 90세 어르신에게 내 시선이 닿았다. 그분의 체구는 90년의 풍상을 견디어내신 만큼 왜소해졌다. 그러나 그의 맑은 눈동자와 고운 모습이 아직도 건강해보였다. 세미나의 프로그램을 안경 없이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잔글씨로 된 성경을 골똘히 읽을 때는 옆모습이 성스럽게까지 보였다. 나이 들어서도 눈이 좋다는 것은 행복이다. 할머니 옆에 60대 초반의 딸이 나란히 앉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뭔가 속삭이더니 점심 후라서 졸리는 듯 딸이 어머니를 무릎에 눕히고 갓난아이 다독이듯 도닥거린다. 다시 “나 일어나야겠다” 하시니 딸은 재빨리 안아 일으켰다. 그렇게 하기를 몇 번.
딸은 사랑의 눈빛으로 노모를 앉혀드리고 옷매무새를 고쳐드렸다. 모녀간의 사랑이 가슴 뭉클하게 했고 그들이 부러워 보고 또 보았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어머니와 다시 한번 모녀간의 정을 돈독히 쌓았으면, 단 한순간이라도 그렇게 살아봤으면, 하고 회한이 밀려왔다.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자식은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고자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꼭 나를 두고 옛사람들이 말한 듯했다. 지금 나는 크게 족하지는 않으나 별로 모자라지도 않는 생활을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용돈을 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왜 나는 그리 못했을까. 젊어서 힘든 생활 꾸려간다는 핑계였을까. 어머니는 나에게 한없이 주고 또 주셨는데.
- 박수영, 시와 산문사, <걱정 속에 작은 재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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