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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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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동네 상가에 갔다가 수선집 유리진열장 안에 있는 ‘면 실타래’를 보았다.
이불 홑창 끼울 때 쓰는 굵은 실 뭉치다. 요즈음 내 이불 실이 달랑달랑 떨어져가, 먼 곳으로 구하러 가야 되나 싶어 막연했는데, 동네에서 쉽게 본 것이다. 반가워서 샀더니 한 타래에 단돈 ‘천 원’. 옛것의 멋을 버리지 못해 목화솜 이불 두어 개에 기어코 홑창을 끼워 쓰는 나는 미뤄뒀던 일들을 하고 싶어, 집으로 와 늦둥이 초등학교 딸아이의 무릎을 빌어 타래를 둥글게 해 끼웠다. 실 한 가닥을 풀어 대추나무 실패에 감아 돌리다보니, 나 어릴 적 친정어머니에게 붙잡혀 지금 내 딸아이의 자세로 앉아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실까지 엉키면 풀어서 감느라 시간이 두 배, 세 배로 길어지니 지루한 것은 당연했고, 철없는 내가 재미없어 하니, 결국 어머니 혼자서 끄덕끄덕 마무리를 하셨다. 처음 대하는 내 아이는 신기해서 마구 웃는데, 실타래를 양손으로도 옮겨 끼워주기도 하고, 비행기가 나는 모양으로 번갈아 기울이면 실이 더 잘 풀린다고 알려주기도 했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도 함께 풀고 감으며 들려줄 이야기가 많고 많은데, 이리저리 모양새를 맞추던 딸아이가 하품과 함께, “천 원의 줄기가 왜 이리도 길고 길어?” 하더니 텔레비전 앞으로 슬쩍 가버렸다.
시간이 그렇게 됐나 보다. 결국, 나도 혼자가 됐다. 하지만 딸아이를 다시 붙잡을 마음이 없다. 돌리고 감아가는 내 손길이 그 옛날 어머니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 국봉희,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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