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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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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옛날 이야기 속에 그려놓은 듯한 나란히 놓인 작은 방 두 칸과 요즘도 군불을 때서 난방을 하는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딸려 있는 집이다. 산과 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당 한쪽에는 뒷간 겸 헛간이 한 채 있다. 방을 드나들 때는 허리를 굽혀야 하고 뒷간에 앉았다 무심코 고개를 들고 나오다가는 영락없이 머리를 박기 일쑤다. 뒷집 할머니네는 염소며 닭, 소, 개들을 풀어놓고 기르고 계시는데 우득우득 꼴을 뜯어먹고 있는 소 옆에 앉아 나물을 캐고 있으면 소도 사람 같고 사람도 소같이 느껴진다. 내가 나임을 잊게 하는 평화로운 생활에 언제부턴지 내 성질을 건드리는 놈이 나타났다. 수탉 두 마리의 호위를 받으며
언제나 한떼로 몰려다니는 뒷집 닭들은 주인 내외와는 달리 기세가 얼마나 당당하고 도도한지, 동틀 무렵의 닭 울음소리로 시작하며 뛸 때도 걸을 때도 머리를 굽히는 법이 없고 이집 저집 마당이며 마루에 발자국을 찍고 다니며 텃밭에 뿌려놓은 씨앗이며 여린 싹들을 얄밉게 파헤쳐놓는다. 은근히 미운 감정이 쌓여가는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니 꽃씨를 뿌려놓은 우리 집 마당을 제 집마냥 헤집고 다니는 게 아닌가. 손에 잡히는 대로 막대기를 집어들고, 뒷간으로 들어가는 닭 한 마리를 쫓는 순간 갑자기 이마에 불꽃이 튀며 앞이 깜깜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놀란 닭들은 이리저리 도망을 치고, 이마를 박고 고꾸라진 내 모습이 너무 우습고, 아프고…. 손에 든 막대기를 던지고, 더불어 살고 싶다면서도 내 것만큼은 조금도 내어주지 못하는 속 좁은 인간에게 내린 자연의 경고라 여기며 몇 날을 피맺힌 이마를 만지면서 지냈다.
- 이영순, 경남 산청군 신안면 안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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